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

by 꼬르따도

언젠가 형이랑 밥을 먹는데, 형이 내 상황이 딱해 보였는지 대뜸 말했다. 나이가 차서 내가 하고 싶은 연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는 것도 좋지만, 어쩔 수 없이 직책을 맡아야 할 땐 맡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에게 내가 끌려가고, 이상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팽당하고 그런 일들이 수두룩해. 직책을 맡으면 일을 지시하고 평가해야 하니까 밑에 애들에게 상처 줄수도 있지, 하지만 그게 내가 반대 입장이 되는 것보다는 나아. 해야 할 때는 하는게 좋다.


나이가 들수록 그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 들을 당시에는 무슨 말이야, 하면서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 같이 뭉개지는 아련한 말이었는데, 이제 어느새 그 말에 물성이 생겨 딱딱하게 손에 움켜 쥐어지는 느낌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회사에서 교회다니는 사람들과 만나 예배를 드리는데, 거기서는 주로 회사 생활에 대한 고충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고 새 힘을 얻곤 한다. 그때 내가 나눈 말 중에, 나는 정의와 긍휼이 있다면 주로 정의와 공평에 예민해서, 긍휼은 신경쓰지 못해 정의라는 그 알맹이 없는 개살구 같은 말에, 그 함정에 빠지곤 만다는 얘기를 했다. 정작 나 자신도 정의와 거리가 멀고 공평과는 무관한 주제에. 그래서 불합리한 조치나 평가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해서 그 정의의 구렁텅이 니는 틀리다는 함정에 빠져 결국 사람들과 사이가 나빠지는 결과에 이른다. 매번 같은 패턴이다. 하나님은 긍휼과 사랑에 대해 밸런스 있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나는 아니 내가 맞아, 그건 틀려 식의 옮고 그름의 이분법에 곧잘 빠진다.


이번 주는 고난주간 말씀과 기도로 잘 무장해서 괜찮다 싶다가도, 회사 내 누군가 퇴사해서 그 일이 내게 부여되자 바로 물밀 듯이 화가 차올랐다. 그러니까, 내가 걔가 금방 나갈 것 같으니 대응을 해야 한다고, 걔한테 평가 잘주고 조기 진급이나 이런 저런 혜택을 주면, 그거 받고 바로 나갈 아이라고. 그 반대편에서 내가 피해를 받았는데, 근데 퇴사자의 업무를 나보고 떠 안으라고 말이 되냐?


이런 맥락의 말이었다. 내가 발견했던 구조 상의 비리가 있었지만 여기서는 더 기술하지 않겠다. 결론적으로 보면 결국 내 말대로 되었다. 그러면 나는 짜증이 나면서도 도덕적 우월감과 내 판단의 예리함을 근거로 잔뜩 우쭐해 진다. 그거 봐, 내가 뭐랬어. 그리고 상대가 눈을 내리깔고 내 의견에 수긍하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


아 나는 이런 마음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 정의롭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한 이 상황에서 긍휼과 사랑이 필요할까. 아무도 나를 배려하지 않는 이 비겁한 상황에서 나 혼자만 고고하게 긍휼한 마음을 가져도 되는 걸까. 그래서 그 피해는 내가 고스란히 받는데. 나는 이걸 이겨 낼 수 있을까, 이 부조리를 견딜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때, 서두에 기술한 형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상황이, 시간이, 환경이 요구할 때, 그러니까 시대가 이렇게 요구하는데, 이렇게 피해를 서로가 서로에게 끼치고 서로가 서로에게 해악을 끼칠 바에야, 거침없이 해보자는 것. 그리고 니가 불만이었던 것을 상급자의 위치에서 느껴봐야 나의 불만이 잠재워질 것 같은 마음이랄까. 해보고 경험해야 아는 것들이 있다. 긍휼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지만, 갑자기 이런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때가 되었다는 느낌, 어쩔 수가 없다는 감정.


하지만 굴러온 돌인데

이 상황에서 어떻게?


조력자도 없는데

이 상황에서 어떻게?


앞 편에서 기술한 것처럼 아무 인맥이 없는 상황에서 윗 사람들의 눈에 들려면 압도적인 실력을 가져야 하는데


이거 참 너무 피곤하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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