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신입 도전기]③필기시험 참패

by gsh

조선미디어그룹의 온라인 경제매체인 A회사의 필기 시험은 8월 24일 토요일 진행됐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다이소에서 구매한 3000원짜리 손풍기를 들고 이마에 흐른 땀을 식히며 집에서 나섰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소는 서울역 인근의 어느 빌딩 5층과 6층이었다. 일찍 도착한 나는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필기시험 논제를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다른 언론사의 동료 기자를 만났다. 취재 현장에서 만났으면 자연스러웠을 사이였지만 이날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뭔가 어색했다. 간단히 서로의 건투를 빌었다. 여담으로 내가 건투를 빈 그 기자는 약 한 시간 뒤, 필기 시험이 시작된 지 약 5분이 흘렀을 무렵 자리를 떠났다. 신분증을 놓고 왔던 것.


필기 시험은 상식과 논술로 구성된다. 각 배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논술이 중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논술은 두 가지 논제 중 하나를 택해서 1000~1400자 분량으로 작성하는 거였다. 첫 번째 논제는 개고기 식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적절하느냐였고 두 번째 논제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에 대한 찬반이었다.


나는 당시 IT부서 기자였다. 부끄러운 말일 수도 있으나 IT를 취재하는 기자는 IT 외 다른 분야의 이슈를 잘 모른다. 물론 당시 나는 IT도 잘 모르는 IT 기자이긴 했다. 두산밥캣, 이름만 보면 반려동물 사료를 만드는 기업처럼 보이는 회사를 잘 알리가 없다. 반면 개고기 식용 금지 법제화에 대한 찬반은 다루기는 좋은 주제다. 토론 동아리에서 약 1년간 활동한 적 있는데 개고기 식용은 사형제 만큼이나 단골 주제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나는 당시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합병과 관련된 논제를 택했다. 대다수 지원자가 개고기 논제를 쓸 것이라고 봤다. 남들과 같은 주제로 경쟁하면 필패라고 생각했다. 논술 시험을 계속해서 준비한 지원자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두산밥캣 논제의 설명글을 읽어보니 대략 감이 잡혔다. LG화학으로부터 분할 상장된 LG에너지솔루션과 결이 비슷했다. 계열사 간 시너지를 노린다는 대주주 측과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 간 입장이 대립된다는 얘기였다.


"금융은 자금의 융통이다. 자금이 이리저리 움직이기 위해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이 두산 그룹의 사업 효율화를 위해 두산로보틱스로 손쉽게 넘어간다면,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를 넘어 국내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하락하게 된다. 한 번 잃은 신뢰는 회복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대략 이런 식의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내용을 잘 모르니 원론적인 입장만 쓸 수밖에 없었을 테다.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쓴 글. 더구나 노트북 글쓰기에 익숙해져 있었던 만큼 볼펜으로 1시간 내 논리정연한 글을 쓰기도 어려웠다. 시험에 붙을 리가 없다. 필기 시험에서 떨어졌다. 후에 듣기론 대부분 지원자가 예상대로 개고기 논제를 썼다고 한다. 새로운 회사 동기도 개고기 논제로 필기 시험에 붙었다고 들었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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