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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소녀 : 두 개의 사중주, 두 개의 생의 목소리

슈베르트 현악 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by 헬리오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연주회를 다녀온 후 가장 깊이 남은 순간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 연재 (21)


슈베르트 현악 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 하겐 사중주단과 파벨 하스 사중주단의 연주


죽음과 소녀 – 두 개의 사중주, 두 개의 생(生)의 목소리


죽음을 앞둔 젊은 천재가 남긴 작품을, 시간의 양극에 선 두 악단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되살린다.
이 얼마나 상징적이고, 또 얼마나 인간적인 장면인가.

나는 그 음악을 들으러 왔다.

죽음과 생, 절제와 열정, 노년과 청춘이 한 무대 위에서 교차하는 순간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 모든 대조가 결국 하나의 진실로 수렴되는, 인간적인 슈베르트의 세계를 다시 마주하기 위해서.


현악사중주는 라이브로 듣기 쉽지 않은 음악이다.

그런데 그것도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라니.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잔혹한 음악.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네 개의 현으로 삶과 죽음을 말해야 하는 음악이다.

음반은 많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현악사중주를 만날 기회는 매우 드물다. 사중주단 자체가 귀한 데다, 대중적인 티켓 파워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사중주단의 좋은 레퍼토리를 현장에서 듣는 일은 늘 갈증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무대는 더욱 특별했다.


한쪽에는 4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하겐 사중주단, 이제 은퇴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진 노장의 악단이다.
9년 만의 내한공연, 아마도 어쩌면 한국에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무대였다.
그리고 이틀 뒤, 무대에 선 것은 파벨 하스 사중주단.
지금 가장 뜨겁게 빛나며 세계의 정점으로 향해 가는 중견의 악단이었다.

하나는 저물어가는 저녁의 그림자, 다른 하나는 막 떠오르는 새벽의 숨결.


쓸쓸해져 가는 가을 저녁을 사이에 두고 두 악단이 같은 작품을, 그것도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연주한다는 사실만으로 이 무대는 이미 하나의 이야기였다.



1. 젊은 천재가 죽음을 마주하던 순간 :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슈베르트가 ‘죽음과 소녀’ 현악사중주를 쓴 것은 1824년, 스물일곱 살의 나이였다.

이 나이에 그는 이미 깊이 병들어 있었다. 매독으로 인한 고통이 서서히 그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고, 그 자신도 그것이 회복될 수 없는 병임을 알고 있었다. 청춘의 한복판에서 그는벌써 자기 생의 끝을 예감하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슈베르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이미 아무 즐거움도 없다.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그의 세계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젊은 천재는 그토록 짧은 생의 정점에서 이미 자신의 죽음이 드리우는 그림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절망 속에서 이 작품이 태어났다.

제목인 ‘죽음과 소녀(Der Tod und das Mädchen)’는 사실 그가 몇 년 전(1817년)에 썼던 가곡에서 따온 것이다. 그 노래에서 소녀는 죽음 앞에 두려워 떨며 애원하지만, 죽음은 다정히 다가와 속삭인다.

“나는 너를 괴롭히러 온 것이 아니다. 이제 잠들거라, 내 품에서 쉬어라.” 이 어조는 잔인하지 않다. 오히려 자장가처럼 따뜻하다.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안식,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평화의 문으로 그려진다.


슈베르트는 이 가곡의 주제를 현악사중주의 느린 악장(제2악장) 중심에 두고 변주곡으로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죽음과 소녀’ 사중주는 단순히 죽음을 묘사한 작품이 아니라, 죽음과 화해하려는 인간의 내면적 여정을 그린 음악이 되었다.


그는 모차르트처럼 신에게 닿으려 하지도, 베토벤처럼 이상에 도달하려 하지도 않았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언제나 인간적인 슬픔과 아름다움의 경계에 서 있었다. 그가 죽음을 노래할 때조차 그것은 절규가 아니라 속삭임이었다. 그의 선율은 거창한 이상 대신, 우리 곁의 고통과 불안을 노래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죽음’은 위엄이 아니라 연약함이었고, 그 연약함 안에서 오히려 숭고함이 피어났다.


1824년의 슈베르트는 병으로 쇠약해지면서도, 여전히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만들었다.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음악은 그 모순 속에서 생겨난다 — 절망과 생, 고통과 평온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공간에서.


그래서 ‘죽음과 소녀’를 듣는다는 것은 단지 비극을 듣는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음악으로 살아남으려는 한 인간의 존엄한 저항을 듣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제1악장의 격렬한 리듬 속엔 삶의 힘겨운 의지가 있고, 제2악장의 변주 속엔 체념이, 그리고 마지막 악장의 무자비한 타란텔라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다”는 피의 맥박이 흐른다.


2. 하겐 사중주단과 파벨 하스 사중주단 : 두 개의 얼굴


그로부터 200년 뒤, 서울의 무대에서 이 젊은 천재의 작품이 다시 울려 퍼졌다.

11월 9일과 11일, 단 이틀의 간격으로.

하겐 사중주단과 파벨 하스 사중주단, 서로 다른 세대의 두 사중주단이 같은 작품을 연주했다.

두 무대는 마치 서로 다른 시대의 두 거울 같았다. 하나는 세월의 무게를 지닌 관록의 목소리, 다른 하나는 생의 열기로 가득한 청춘의 목소리였다.


하겐 사중주단 – 세월의 그림자 속의 평온


하겐 사중주단은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고, 절제된 긴장 속에서 음악을 음미했다.

1악장의 도입부부터 서스펜스를 조심스레 쌓아가되, 결코 폭발을 서두르지 않았다. 어두운 음색이 깔리면서도 각 성부가 서로를 의식하며 대화하듯 엮여갔다.

리듬은 단단하지만 재촉하지 않았고, 리듬 내부의 ‘맺고 끊음’을 잘 들려주었다.

음이 숙성된 와인처럼 깊어서, 청중으로 하여금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2악장은 그들의 세계가 가장 잘 드러난 순간이었다.

들으면서 그 죽음의 체념이 내 안을 천천히 적셔왔다.

눈물은 흘러내리지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나는 울고 있었다.

주제의 변주마다 색채와 감정의 결이 섬세하게 드러났고, 감정의 물결이 절제된 폭으로 흐르며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들었다.

그들의 체념은 차가운 절망이 아니라, 이미 고통을 통과한 자의 고요한 눈물 같았다. 청중은 숨을 고르며 그들과 함께 ‘죽음의 평화’를 듣고 있었다. 처연했다. 관록의 연주다웠다.


3, 4악장에서도 폭발을 앞세우기보다는 구조와 명료함을 유지하는 연주였다. 그러나 그 절제의 뒷면에는 세월의 무게가 있었다. 창단 40년을 넘긴 노장의 단체답게, 그들의 연주는 달관에 가까웠다.


이날 1악장 연주의 초반, 첼리스트가 잠시 활을 놓치는 실수가 있었다. 객석은 일순 정적에 잠겼지만, 그들은 곧바로 음악을 회복했다. 실수조차 음악의 일부로 흡수하는 품격 — 그것이 하겐의 연륜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장면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그림자이기도 했다.

첫 번째 바이올린의 음색은 여전히 고결했으나, 예전의 강단은 사라지고 있었다. 세월이 만든 깊이와 쇠약이 겹쳐진, 아름답고 쓸쓸한 순간이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겐의 슈베르트는 여전히 숭고했다. 감정을 절제하며 한 음 한 음을 음미하는 그들의 방식은, 마치 노년의 철학자가 죽음 앞에서 조용히 삶을 정리하는 듯했다.

음과 음 사이의 여백에서 ‘죽음’의 침묵이 들렸다.

그 침묵은 어쩌면 절망이 아니라, 이미 모든 슬픔을 통과한 자가 얻은 평온의 소리처럼 들렸다.


파벨 하스 사중주단 – 생의 불꽃과 저항


이틀 뒤, 파벨 하스 사중주단의 무대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의 음악은 살아 있는 심장의 박동처럼 거칠고 뜨거웠다.

2000년대 초반 창단한 중견단체답게, 그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강렬한 드라마, 직접적인 긴장, 대비의 폭발.

나는 음악의 외곽에 서 있는 방관자가 아니라, 그 한가운데로 밀려 들어가는 주인공이 되었다.

하겐이 조용히 관조하는 연주라면 파벨 하스는 내가 그 속에서 파도를 타는 느낌이었다.


1악장의 첫 리듬부터 운명적이고 강한 리듬이 추진력을 갖고 앞으로 나아갔다. 대비감은 크고, 소리는 날것의 생명을 토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어 드라마 한가운데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2악장도 여전히 폭발적인 감정, 죽음과 맞서는 청춘의 분투를 보는 것 같았다. 체념은 없었다.

그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죽음과 마주한 청춘이 울부짖듯, 그들의 슈베르트는 여전히 뜨겁고, 아직은 젊었다.


드디어 피날레, 그들은 거의 숨 돌릴 틈 없이 몰아붙인다.

리듬은 점점 속도를 높이며, 마치 이탈리아 춤곡의 타란텔라처럼 청중을 끌어들였다.

그것은 죽음에 저항하는 춤이자, 살아 있음의 절규였다.

그러나 리듬의 힘과 몰입감이 극대화되어 그 절규가 끝날 무렵, 나는 오히려 죽음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심연으로 치닫는 느낌도 들었다.


그들의 슈베르트는 절제 대신 폭발, 회한 대신 생의 긴장감이 있었다.

소녀가 죽음이 내민 손을 잡기보다는 끝까지 저항하는 듯한, 뜨거운 슈베르트였다.


3. 현악 4중주, 서로를 향한 네 개의 길


라이브로 현악 사중주를 두 번 들으면서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네 악기의 완벽한 균형이었다.

세컨드 바이올린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는 주체로서 또렷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올라는 바람처럼 흘러가며 음의 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졌고, 첼로는 대지처럼 단단히 버티며 음악의 중심을 세웠다.


네 개의 악기가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손끝이 맞닿는 순간들, 바로 그 찰나에, 현악사중주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촘촘히 얽힌 선율들이 하나의 문양을 이루어가고, 그 안에서 나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서로에게 기대고, 밀어내고, 다시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장르를 여전히 사랑한다.

현악사중주는 네 사람이 서로의 숨을 듣는 예술이다. 그것은 가장 인간적인 예술이다.

피아노가 혼자의 고백이라면, 사중주는 네 사람의 대화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숨을 맞추고, 기다리고, 때로는 부딪히고, 다시 화해하며 그 복잡하고 섬세한 공존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는 인간의 온기와 불완전함이, 그리고 서로를 향한 이해의 빛이 깃들어 있다.


두 공연을 차분히 되돌아보면,

하겐의 연주에서는 세월의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파벨 하스의 연주에서는 생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하나는 저물어가는 노을 같았고, 다른 하나는 새벽을 여는 불빛 같았다.


둘 다 서로 다른 빛이었음에도 두 연주는 결국 슈베르트의 인간적 진실을 향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그 단순하고도 깊은 깨달음이었다.

슈베르트는 이 작품을 쓴 지 4년 뒤,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사중주는 두 세기 뒤 서울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고, 그 음악속에서 나는 그의 짧은 생이 죽음 너머에서 다시 길게 숨 쉬는 것을 느꼈다.


"죽음과 소녀",

이 제목 속의 두 단어처럼, 우리는 여전히 사라짐과 생동, 절제와 열정, 끝과 시작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그것은 죽음을 노래하지만, 기이하게도 생의 온기를 전한다.

슈베르트는 알았을까? 진정한 음악은 죽음 이후에도 울릴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의 언어라는 것을.

그가 진정 두려워한 것은 어쩌면 죽음이 아니라 사라져 버리는 인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겐 사중주단 (Hagen Quartet)

- 2025년 11월 9일 롯데 콘서트홀에서.




파벨 하스 사중주단 (Pavel Haas Quartet)

- 2025년 11월 11일 예술의 전당에서.



Schubert: String Quartet No. 14

in D Minor, D. 810 "Death and the Maiden"


Hagen Quartet (하겐 사중주단)


https://youtu.be/zrhuSx4QrsE?si=__B3qDkxEsuV1lOR


https://youtu.be/99-yng6E7sI?si=VkcEMIKvs2HP_s5L

https://youtu.be/hOsT2_8OsX0?si=uzsEjzVPoIcP_AhV

https://youtu.be/lX33ILOz6ZM?si=9WPHmbzmo1McBwUS


Pavel Haas Quartet(파벨 하스 사중주단)


https://youtu.be/Mvkfm_ckWIY?si=sVCFoGEzWG6K99hu


https://youtu.be/5dNEyks2yEk?si=4Wc8SL6lnBrZUOXb

https://youtu.be/PyeDoGBG7aY?si=OvvIJpOyVFKYpd26

https://youtu.be/h8yA52NGuGs?si=UhXlRtcVCwYDu0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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