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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와 나무, 바람과 단풍, 그리고 가을 빛

산행기 (2) : 벗들과 함께 북한산 숨은벽 단풍 산행기

by 헬리오스

산행기 (2) : 2024년 가을 :

바위와 나무, 바람과 단풍, 그리고 가을 빛

벗들과 함께 북한산 숨은벽 단풍 산행기

단풍 산행기


주말에 단풍을 맞으러 오른 북한산 숨은벽.

아직 푸른빛이 남았으나 바위산 단풍이 좋아 몇 자 적어본다


북한산 숨은벽 능선길은 처음부터 나의 발걸음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발아래 깔린 바위들은 내 앞을 가로막는 벽처럼 서 있고,

때로는 손으로 바위를 짚으며, 차갑고 거친 돌의 결을 느끼는 순간마다 내 마음도 그 울퉁불퉁한 표면에 부딪힌다.

능선길을 따라 나무 사이를 스쳐오는 가을바람은 단풍을 실어 나르고

아직 푸른빛을 품고 있는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붉은 잎사귀들은 불씨처럼 타 들어와 온 산을 붉게 물들인다.

바위와 나무, 바람과 단풍, 이 모든 것이 산이었고 나는 그 속에서 아주 작은 존재로 산과 하나가 된다.


산꼭대기를 향해 오를수록 하늘이 점점 가까워진다.

능선 중간쯤,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니 하늘은 투명하게 펼쳐지고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맑은 하늘 아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워지고, 마음마저 탁 트이는 듯하지만, 여전히 숨은 벽처럼 서 있는 바위들이 나를 붙잡는다.

돌 하나하나를 디디며 저 봉우리를 향해 한 걸음씩 올라갈 때마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거친 돌의 감촉,

거친 바위를 넘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발끝으로 닿는 모든 바위와 단풍이 세상 이야기를 가져와 나에게 들려준다.


노래처럼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며 더 오를 곳이 없다"는 순간이 오리란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나는 계속 오른다.

조금씩 조금씩 나 자신이 그 바위처럼 단단해짐을 느낀다.

능선에 올라 봉우리에 다다르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발아래로는 작아진 마을과 사람들, 그리고 멀리까지 펼쳐진 산줄기는 나의 여정을 감싸 안고 있다.

가을바람은 시원하게 다가오지만, 안에 담긴 단풍의 향기는 따뜻하다.

나무들 사이로 붉고 노랗게 물든 잎사귀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추고,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잠시 멈춰 선다.

산꼭대기 바위에 앉아 가슴을 펴고 노래를 부르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더 오를 곳이 없으니 더 이를 곳도 바랄 것도 없더라" 는 노래처럼,

이제 더 오를 곳이 없다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이 되어 내 마음속을 채운다.

산을 보고 나를 본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바위와 나무, 바람과 단풍,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의 모든 빛, 순수한 감각으로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숨을 터트리는 해방감이다.

눈앞의 모든 것이 나를 통해 흐르고 나의 숨결은 그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오늘 산은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보았다.

더 이상 갈망하지 않아도 되는 이 순간에 나와 산만이 남아 있다..


* 덧붙임말 : 일부 멋진 사진은 함께 산행한 친구가 찍은 것이며

인용구는 송골매의 '산꼭대기 올라가' 노래가사에서 인용한다.


#북한산 #숨은벽 #단풍 #송골매 #등산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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