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랑 (Lang Lang) 피아노 독주회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연주회를 다녀온 후 가장 깊이 남은 순간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오늘 11월 마지막 저녁
피아니스트 랑랑 공연.
예술의 전당 2500여 석이 만석이다. 피아니스트 독주회에 이 정도 티켓 파워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웬만한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합창석까지 매진은 쉽지 않은데…
오늘의 연주는 한마디로 차가운 겨울밤을 녹이는 뜨겁고 영웅적인 열정으로 가득 찬 연주라고 하고 싶다.
그의 연주는 완벽한 테크닉에 기반한 감정의 극대화 그리고 화려한 쇼맨십을 얹어, 단순한 피아노 독주를 넘어선 한 편의 드라마, 좀 과장해서 종합적인 예술(?)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현란한 왼손의 동작과 과장된 몸짓, 표정 속에 담긴 감정, 그리고 섬세한 여린 음에서 감정을 극대화하면서 피아노와 교감하는 모습은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감하게 했다.
그의 에너지는 2500석을 가득 메운 공연장 구석구석까지 전달되어 청중을 음악에 깊이 빠져들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1부의 라벨과 슈만이 좋았다.
라벨의 파반느는 단순한 멜랑콜리와 우아함이 중심이 되는 곡인데 랑랑은 이 우아함에 감정의 깊이를 더했다.
처음부터 아주 여리게 감정을 끌어올리면서 오른손은 선율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마치 한 폭의 유화처럼 섬세하게 터치하고 특유의 부드럽고 둥근 레가토를 통해 우리에게 라벨의 색채적이고 신비로운 음향을 들려주었다.
왼손은 때로 좀 과도하게 강조되어, 라벨이 의도한 고요하고 절제된 느낌을 넘어서 다소 드라마틱했지만 이 또한 좋았다.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도 극적인 감정 변화와 화려한 복잡성을 담고 있는 곡이라서 랑랑의 극단적인 다이내믹과 화려한 기교가 유감없이 발휘된 연주였다. 극단적인 감정의 대비는 눈앞에 슈만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2부는 쇼팽곡이었는데 먼저 마주르카는 그의 강렬한 개성이 돋보인 연주였으나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는 연주였다.
3박자의 춤곡인 마주르카, 두세 번째 박자에 강조점이 두어지는 불균형적 리듬의 특징과 향토적 정서가 충분히 살지 않았고 대신 그의 개성만이 두드러진 연주였다.
어쩌면 이는 외국인이 단순한 가락의 아리랑의 선율을 연주는 할 수 있어도, 그 안에 응축된 우리만의 한, 향수를 완전히 살려내기 어려운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중국 태생의 미국인으로 어쩌면 마주르카에 깃든 폴란드 민속음악의 소박한 단순함과 향토적인 정서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련된 기교와 감각적인 표현력으로 선명한 음색과 절제된 리듬감을 드러내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마주르카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런 마주르카는 나에게는 향토적 매력과 춤곡의 소박함은 부족한 약간은 무색무취의 마주르카였다.
좋았지만 아쉬움이 남는 연주였다.
마지막으로 폴로네이즈 Op 44는 그야말로 랑랑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연주였다.
그래서 아마도 이곡을 연주 마지막에 배치하였으리라.
이곡은 특유의 장중한 리듬 위에 웅장한 에너지를 드러내는 곡이다.
랑랑은 이러한 리듬적 구조를 아주 잘 살렸으며, 어느 누구의 폴로네이즈보다도 드라마틱한 극적 긴장감이 최고였다.
그의 화려한 왼손과 몸짓, 표정까지 더하여 곡의 영웅적 성격을 한껏 부각했다.
연주는 불꽃같은 폭발적인 에너지와 드라마틱한 서사로 청중을 압도한 한 편의 화려하고 정열적인 드라마였으며, 곡이 끝난 뒤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늘의 공연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본듯한 공연이었다..
나름 음악은 듣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특히 피아노 독주회는 더더욱...
오늘 랑랑의 연주는 귀와 눈이 함께 즐거웠던 공감각적 연주였다.
나름 색다른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