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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을 비추는 거울 "오텔로" 시각적으로 완성되었다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by 헬리오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연주회를 다녀온 후 가장 깊이 남은 순간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 연재 (1)


2024년 8월 25일 베르디 오페라 " 오텔로" /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키스 워너 연출, 카를로 리치 지휘/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르디 오페라 " 오텔로"


오늘 공연의 주인공은 단연 키스 워너의 연출이다.

물론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이토록 훌륭한 소리를 이끌어낸 지휘의 카를로 리치도 너무 대단하다.

그러나 나는 오페라를 보는 내내 연출에 넋을 놓고 있었다.


음악의 소리가 일반적인 소리와 다른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물리적 진동이나 소리의 파동을 넘어서 감정의 깊이를 내포한 복합적인 언어로서 작용하여 이야기의 서사적 의미와 감정적 맥락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음악에 오페라는 대사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그 서사를 더 잘 전달하는 장치를 두는데 이것만으로도 부족하여

키스 워너는 바로 공간적 이미지를 통하여 음악을 넘어서는 심리적 서사극 오페라 "오텔로"를 시각적으로 완성한 것이다.


키스 워너의 연출은 무대를 인간 심리를 드러내는 도구로 극단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현대의 무대 연출이 대부분 이러한 경향성을 띄지만 19세기 오페라에 이런 연출을 잘 해내기란 쉽지 않다.

그의 연출에서는 무대 디자인과 공간 배치가 인물들의 내적 갈등, 심리적 상태, 그리고 그들 간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것을 절묘하게 그려낸다.

특히 "19세기 멜로드라마의 구조에서 벗어나 20세기 심리학적 관점에서 한 남자의 편집증이 악화되어 빛을 잃어가는 과정"(키스워너의 글에서 인용)을 천제적으로 그려낸 "오텔로" 같은 심리적 깊이가 중요한 작품에서는 이런 연출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배우들 의상은 고전스럽지만 전체 무대는 단순하면서 아주 현대적인 시각적 장치를 활용한 그 조합의 창의성에 놀랍다.

가끔 요즘 연출한 베르디 오페라를 보면 의상, 무대도 너무 현대적이라 극의 흐름과 좀 동떨어진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데

이번 공연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는 것은 순전히 키스 워너의 연출 덕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오늘 오텔로 연출의 최고 백미는 2막의 오델로/데스데모나/이아고/에밀리아의 4 중창이다.

이 장면은 드디어 이아고의 음모가 오텔로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순간을 담고 있으며,

오텔로의 심리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시발점이다.


오텔로는 무대 중앙에 위치하고 이아고는 뒤편 또는 측면에 위치해 오텔로 주위를 감싸듯이 배치된다.

마치 그림자처럼 오텔로의 심리를 조정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이것은 오텔로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많은 장면에서 이아고는 오텔로의 위쪽 또는 뒤쪽에 배치하여 이아고가 오텔로의 심리를 조정하고 우위에 서는 심리적 상태를 표현한다.

데스데모나는 측면에서 오텔로를 향하여 다가가지만 오텔레는 그녀와 점점 더 멀어지며 거리를 두는 동선에 배치된다.


여기에 구멍 뚫린 벽과 그를 통해 비치는 조명은 인물들의 심리적 상태와 갈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아주 중요한 도구로 역할을 한다.. 사실 이 벽은 4막 극 내내 등장한다.

구멍 뚫린 벽은 비밀과 관찰의 역할을 하는데 관객이 인물들의 사적이고 내밀한 순간을 들여다보는 효과를 제공한다.

불규칙한 형태의 구멍은 인물들의 심리적 혼란과 갈등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며, 조명이 이 구멍을 통해 비추어질 때, 인물들은 부분적으로만 드러난다. 이것은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의 복잡성, 전체를 알 수 없는 파편화되고 고립된 심리적 상태를 시각적으로 아주 잘 전달한다.

또한 조명이 벽을 통과하면서 인물들을 왜곡된 형태로 비출 때, 이것은 그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왜곡과 혼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렇게 연출자는 인물 간의 시각적 간섭과 긴장잠을 드러내는 장치로 구멍 뚫린 벽과 조명의 효과를 이용하는 탁월함을 보인다.


연출자 키스 워너는 19세기 오페라에 20세기 심리극에서 많이 쓰이는 공간의 분리를 심리적 거리로 두는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무대공간의 분리는 그만큼의 심리적 거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조명과 그림자를 활용 또한 뛰어나다.

조명은 강한 명암대비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그림자는 심리적 조정상태를 드러낸다.


이렇게 워너의 무대 및 배우 배치는 오텔로의 심리적 갈등과 이아고의 음모가 절정에 달하는 순간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해 낸다. 무대 공간의 분리를 통한 인물들 간의 심리적 거리, 그리고 조명의 활용은 이 장면에서 오텔로가 느끼는 불안과 혼란, 데스데모나에 대한 편집증을 강조하며, 관객에게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키스 워너의 탁월한 연출 덕분에 오텔로는 19세기 멜로드라마에서 21세기 최고의 심리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나에게는 단연코 지금까지 본 "오텔로"중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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