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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홍 Nov 30. 2017

네가 없는 낙원 中


해안을 따라 이어진 둘레길을 정처 없이 걷다 고갤 들었을 때,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바다는 눈이 부실 정도로 선명했다. 시리도록 쨍한 파란색 위로 쏟아지듯 뿌려진 빛이 소란스럽게 반짝이고, 그 그려놓은 듯한 평온에 정확힌 뭔지도 모를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 있는 대로 소릴 질렀다. 악을 쓰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소릴 지르자니 덩달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대체 그 하잘것없는 풍경의 무엇이 위로였냐고 네가 묻는다 해도 마음을 펼쳐 보여줄 수 없듯이 콕 집어 이거야,라고 말해주긴 힘들겠지만 그건 그때의 일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답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야. 정말로, 정말 스스로도 정확히 어떤 부분의 무엇이 그리 와 닿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일평생을 봐온 그 바다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다거나 특별히 더 아름다웠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를테면 그런 거였다. 굳이 얘기한다면 새삼 그게 왜? 싶을 정도로 사소한 것들.
네가 먹기 싫다며 남긴 우유를 내가 먹어주던 일이라던가 좋아하는 영화를 함께 몇 번이고 돌려보던, 그런 일들. 늘어지게 자다 깬 주말의 늦은 아침. 방문 밖으로 들려오는 적당히 소릴 줄인 TV 소리나 티격 거리던 엄마와 아빠의 웃음소리. 오늘 아침 메뉴임이 분명한 음식 냄새 같은 것들.

별스러울 것 없는 일상의 어떤 부분들.
절망과 슬픔의 사이 어디쯤 끼어있을 때 삶을 지탱해 주는 것들은 대게 그런 사소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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