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에 의한 롤모델
술과 함께 들이키던 네 한숨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하얀 셔츠를
아무렇게나 걷어 부친
네 넋두리를 듣고 있었다.
시팔, 내가. 내가 누굴 존경하든 안 하든
내 마음이지, 그 사람이 좋아서도 아니고
면접때문에 롤모델을 정해야 하느냐고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연관 검색어에 놓인 추천 롤모델을
한껏 비웃던 너는, 그러함에도
다음번 면접 때 혹여나 면접관이 묻는다면
누굴 롤모델로 내세우는 게
좋겠냐고 물었다.
술을 들이키지 않아도 입안이 썼다.
평소 롤모델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세상은 이렇게나 넓고
겹겹이 쌓아온 시간은
숨이 막힐 만큼 아득할 텐데
그 긴 시간 동안 네 마음을
사로잡을 이 하나 없었다는 게.
그러함에도 필요에 따라
롤모델을 말해야만 하는 사회도.
외로운 세상이라 말하는 것 같아서.
온통 외로운 것만 같아서.
널 따라 한숨섞인 술잔만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