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드십 4

#교우관계

by 정썰

“우리의 현대사회는 그전에 그리도 중시하던 문벌과 협동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서 개인의 능력이나 창조력을 문벌보다 더 중요시하는 시대로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친구나 다른 사회인들과의 교우관계도 도덕적인 연결로서 이루어지는 대신에 자기의 목적에 의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결합하게 되었다. ····· 친구란 무엇인가? 우정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용과 착취의 대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누구 하나 진실한 의미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구나 하는 고독감에 사로 잡혀서 무력감에 번민하는 존재로 변모되어 버렸다.” (최신해, 청량리뇌병원장의 ‘불안’중에서) 불로거가 인용한 글을 읽고 또 읽는다. 친구에 대한 정의가 너무 비관적이다. 너무 극단적이다. 하지만 부인하기도 어렵다.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게 되는 유소년기부터 교우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사회문제로 부각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기도 하다. 어른, 부모들의 경도된 가치관이 자녀들에게 미친 좋지 않은 영향은 차치하더라도 전반적인 환경이 친구를 사귀는 일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좋은 사귐은 고사하고 사귐 자체가 어려워진 거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우리에겐 죽마고우도 있고, 운동친구도 있고, 술친구도 있고, 밥친구도 있다. 친구라고 모든 면에서 잘 맞기도 힘들고, 억지로 맞춰가기도 힘들다. 난 배우자의 조건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꼽는다. 대동소이보다는 소동대이가 서로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도 살아가는 동안 한 명쯤 있어야 한다. 이런 친구를 만나는 시기는 다양하다. 많은 시행착오가 동반된다. 억지로 되지도 않는다. 친구의 사귐에 왕도는 없지만 친구 사귐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방법은 있다. 경험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 경험을 나워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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