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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잠

20250228/금/맑음

by 정썰
미키_17

모 교수님의 경험담은 충격적이었다. 해외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 지도교수님의 첫 질문이 ‘너는 몇 시간을 자야 하는 사람이냐?’였다는. 그 교수님은 물론, 나도 그때 처음 들었던 질문이다. 질문의 의도를 종잡을 수 조차 없었다.

요는 이렇다. 사람마다 필요한 충분한 수면시간이 다르고 그 시간을 지켜야 능률적으로 학업에 임할 수 있다는 거다. 너의 수면 패턴에 맞춰주겠다는 숨은 의도는 낯설지만 감동적이다.


요즘 부쩍 피곤함을 느낀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몇 가지 단어가 원인으로 떠오른다. 나이, 운동, 밥, 그리고 잠.

나이는 어쩔 수 없다. 이겨내려 운동도 하고 밥도 가려 먹으려 하고, 잠도 잔다. 그러니 나이는 빼자.

운동. 주 5일 40분, 달리길르 포함한 산행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게 과한가? 가끔 의문이 든다. 잠정 결론은 이 정도는 최소한의 운동량이다. 무혐의.

밥. 아침을 거의 챙겨 먹고, 점심은 간단하게 , 저녁을 많이 먹는 편이다. 저녁 양을 좀 줄이면 어떨까? 일단 훈방.

잠. 요 녀석인 거 같다. ‘4당 5 락’이 유행하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 수면의 과학을 알고 나니 너무 억울하다. 군생활동안도 충분한 잠을 못 잤다. 일곱 시간. 난 하루 일곱 시간을 자야 하는 사람이다. 그걸 오십이 되어서 알았다. 너무 억울하다. 억울하다면서도 요즘 빈번하게 일곱 시간을 채우지 못했다. 하루에 반드시 해야 할 것 들을 미루다 보면 취침시간이 자꾸 밀리고 아침엔 이상한 욕심에 같은 시간에 일어나려 한다. 결국 충분히 잘 수 있는 생활패턴을 내가 뭉갠 거다. 잡았다 요놈.


쉬는 날. 아침에 아내를 출근시키고 오후 한 시 사십 분엔 아내 차를 자동차검사장까지 데리고 가야 한다. 겸사겸사 내가 아내차를 운전해서 돌기로 했다. 중간에 비는 시간에 영화를 본다. 이처럼 딱딱 들어맞는 스케줄은 보람을 준다.


‘미키 17’. 10시 40분. 개봉일에 맞춰 영화를 관람한 건 처음인 듯. 이마저 뿌듯하다.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 영화가 시작하기 전 졸음이 몰려온다. 걱정이다. 오랜 전 한 참 잠 못 자고 고생하던 시절에 선배 커플을 따라 금촌에 있는 영화관에서 ‘식스센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 반전의 영화를 보면서도 졸았다. 다행히 영화는 졸음을 이길만 했다. 아니,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시계를 보니 오후 한 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잘 봤다. 그리고 급격히 졸린다.


집에 도착하니 두 시가 조금 넘었다. 라면 두 개를 끓여 먹고 소파에 앉아있다 살포시 누워본다.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

저녁 여덟 시에 눈을 떴다. 상쾌하게 가 아니라 마지못해 쪽잠을 자려했는데 쭉 자버렸다.


잠을 죽음에 비유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난다는 비유적 표현인데 억지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중간하게 긴 잠을 자고 나니 미키처럼 17, 18이 겹친 듯 몽롱하다. 빨리 할 거 하고 진짜로 자야겠다. 3월부터 수면 패턴을 반드시 지켜보겠다는 다짐으로 2월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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