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의 추억 : 양심의 공소시효
자작시.
(제목은) 수. 세. 미.
줄을 타고 꼬불꼬불 올라가다가 어느새 노란 꽃이 예쁘게 피었네요.
줄을 타고 꼬불꼬불 올라가다가 어느새 탐스럽게 열매가 열렸네요.
수세미씨 뿌린 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벌써 나보다 키가 크네요.
40년 가까운 시간도 지우지 못한 시. 시어 하나하나가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튼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노란 16절 색지에 녹색으로 써내려 간 동시. 오른편 여백엔 수세미 덩굴도 그려 넣었다. 평가결과는 빨간색 동그라미 안에 '수'. 그 시절 자랑거리가 부끄러움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건 유명 작곡가들의 표절이 사회문제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표절'이라는 용어마저 생경했던 시절에 내가 누군가의 시를 표절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문득 떠오른 후 풀어야 할 숙제처럼 머리 뒤쪽에 묵직하게 남았다.
국어시간. 즉흥 백일장의 시제가 '수세미'였을 거다, 난 반사적으로 줄줄줄 써내려 갔다. 마치 천재 문학소년처럼. 당시엔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무슨 삼행시도 아닌데 삼행시 보다 더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낡은 색종이를 바인더에 잘 간직해 뒀다. 처음에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그 후로는 표절의 증거로. 아무리 검색창에 두드려 봐도 동시 '수세미'는 찾을 수 없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네가 쓴 시일 수 있잖아. 자작극이 아닌 자작시!' 그런데 그러기엔 알리바이가 부족했다. 사실 난 수세미에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잘 알지도 못했다. 뜬금없이 친한 척, 꽃이 어쩌니, 키가 저쩌니 할 수 있었을까? 분명 어디선가 읽고 자연스럽게 암기가 된 거다.
꼴랑 시골 초등학교 반 장원 동시 표절 사건을 계기로 유명 연예인들의 표절에 대해 관대해졌다. 유명인들의 표절이 의도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매일 글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귀에 달고 살면 나도 모르게 창작의 과정에 스며들 수도 있지 않을까? 기억의 한계를 넘어 자신도 모르게 도덕성의 영역으로 흘러든 표절이라면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기에 조금 더 예민하게, 조금 더 치밀하게 표절을 바라봐야 하겠다. 창작의 지난함을 알기에 불현듯 떠오르는 찰나의 영감은 한 번 더 의심하고 볼 일이다.
자작시(自作詩)인지 자작극(自作劇)인지 아직도 판명되지 않은 그 시를 난 계속 잘 간직할 작정이다. 두고두고 경계의 표석으로 삼으련다. 저작권 위반의 공소시효는 6개월 정도일지 모르지만 양심의 공소시효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