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사랑이냐 현실이냐

너는 고를 수 있겠어?

by 내일의꿈

'결혼, 사랑이냐 현실이냐'에 대한 글을 쓰려하니 영화 한 편과 소설 한 권이 떠오른다. 영화는 엄정화 주연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이고 소설은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영화에서는 사랑과 결혼을 철저히 분리하려는 남자와 현실적인 선택으로 결혼을 택한 여자의 엇갈린 관계를 그린다. 그와 그녀는 사랑했지만 그는 결혼 자체에 주저했고, 그녀는 그가 가지지 못한 안정성에 결핍을 느꼈다. 남자는 홀로 되는 선택을 했고, 여자는 현실을 쫒는다. 남자는 자유 속에서 공허를 얻었고, 여자는 제도 속에서 생존을 얻었다. 남자는 기댈 곳을 잃었고, 여자는 낭만을 잃었다.


소설에서는 '사비나'의 상념을 기억한다.

그녀는 일생 동안 자신의 적은 키치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조차도 자신의 존재 깊숙한 곳에 키치를 품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키치, 그것은 사랑하는 어머니와 지혜로운 아버지가 군림하는 평화롭고 부드럽고 조화로운 가정의 모습이다.
이 이미지는 그녀의 부모가 죽은 뒤에 가슴속에서 배태되었다. 그녀의 삶이 이 아름다운 꿈과는 아주 달랐기 때문에 이것이 지닌 매력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텔레비전의 멜로드라마 속에서 배은망덕한 딸이 버림받은 아버지를 품 안에 껴안는 모습이나 행복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의 창문이 황혼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면, 그녀는 두 눈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설을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념이긴 하지만, 연애에 있어서도 극단적 자유주의자였던 사비나는 마음속으로 신파극의 가족을 꿈꾼다. 남들과 똑같아지는 걸 혐오했고, 타인의 시선에 맞추는 삶을 거짓이라고 확신한 그녀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달랐다. 어쩌면 그녀가 적으로 삼았던 모습들은 자신도 부정해 온 내면의 통속적인 욕망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언급한 영화와 소설은 겉으로는 공통점이 없다. 파고들어 가도 크게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에게 두 소재가 더욱 밝게 빛난다. 영화에서는 결혼 시점의 낭만과 현실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고, 소설에서는 결혼을 통해 갈망하는 소속과 안식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다. 두 시선은 상호 보완적이다.


그래서.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결혼이 사랑이냐 현실이냐 나에게 다시 묻는다면, 현실이 곧 사랑이라고 답하고 싶다. 나는 멍청해서 추상적인 개념은 모른다. 실존하는 현실을 믿을 뿐이다. 생생한 현실이 더 명백하고 또한 더 다가가기 쉽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아래 문장에 대해서는 얇은 유리처럼 얼어버린다.


'음... 사실 이 세상에 사랑해서 결혼했을 때 큰 문제 생길 일이 있을까 싶네요. 진심 어린 사랑이라면 잘나 봤자 얼마나 잘나고 못나봤자 얼마나 못났을까요 그렇기에 사랑해서 결혼한다면, 계속 합심해서 나아간다면 다른 사람들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AI에게 묻는다. 결혼은 사랑이야 현실이야? 넌 어떻게 생각해?


AI가 답했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결혼은 둘 중 하나라고 보긴 어렵다. 사랑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고, 현실만으로는 시작되기 어렵다. 사랑은 관계를 시작하게 만드는 동기이고, 현실은 그 관계를 지속하게 만드는 조건에 가깝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사랑으로 결혼을 결심하지만, 실제 결혼 생활은 돈, 책임, 생활 습관, 가족 문제 같은 아주 구체적인 현실 위에서 굴러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함께 감당하는 과정 자체가 사랑의 한 형태로 바뀌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사랑이냐 현실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결혼은 사랑으로 선택하고, 현실로 증명하는 일에 더 가깝다고.


이 친구.. 질문 자체를 틀어버리네...

하지만 너무 범생이 주례사 같은 말씀이라 실소가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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