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 그 기로에서
-행복과 불행. 그 기로에서
가끔씩 지나친 감정에 자신을 가둘 때가 있다. 가슴은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고 머리는 처음과 끝을 구분 지을 수 없는 실타래처럼 서로 엉킨다. 하늘을 올려봐도 끝이 있는 것 같고 모니터 속 화면은 모두 가식으로 느껴진다. '나는 혼자다.' '나는 안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나를 감싼다. 이런 생각은 아무런 출구도 없고 점점 더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 같지만, 그것이 현실인 것 같아 어둠 속에 홀로 아우성 댄다.
이런 아우성은 나를 얄팍한 우울로 초대한다. 물론 우울하다고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쁠 때는 이유가 있고 슬플 때는 이유가 없다. 그 결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 하지만 아무 조건 없이도 불행해진다. 행복에 조건이 필요하다면 그 조건을 충족시켜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불행에 조건이 없다면 그 조건을 없애 불행해지지 않을 수는 없다. 없애야 할 불행의 조건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조건적 행복. 무조건적 불행. 내가 문제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행복은 노력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이 되고 불행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된다. 게다가 한번 얻은 행복은 금세 사라져 하늘 위로 날아가 버리지만 불행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쌓여 상처가 된다. 이러다 보니 행복은 늘 고민해야 하는 끼니 같은 것이 되고 불행은 동전의 앞 뒷면 같은 삶의 이면이 된다.
조금 더 가깝게 바라본다. 종종 공상은 나를 배반하고 실제 경험만이 생생하니까. 나는 언제 행복했고 언제 불행했을까. 나는 열심히 운동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할 때 만족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내 혀의 미각이 신기했고, 가볍게 술에 취할 때는 자유로웠다. 노력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보일 때 희망찼고, 내 꿈에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았을 때 충만했다. 나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놀라웠고, 남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함께 즐거워졌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 믿을 때 행복했다.
그렇다면 불행은?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을 자려는데 모기가 귀에서 윙윙거리면 극도로 짜증 났다. 열심히 찾아간 맛집이 그지(?) 같을 때는 화가 났고, 과음 때문에 숙취나 우울감이 찾아올 때면 허망했다. 열심히 해도 결과가 따라 주지 않으면 고통스러웠고, 열심히 해도 안 될 것 같아 포기했을 때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누군가와 트러블이 심해질 때는 모든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꼈고, 때로는 군중 속에서 소외되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변해버린 그 혹은 나 자신의 모습과 행동 때문에 불행했다.
가까이서 바라보니 살짝 다르다. 센치할 때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행복은 조건이 있고 불행은 불쑥 나를 찾아온다고 여기지만 경험에 기대어 바라보니 행복과 불행을 통해 '통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실 행복이나 불행. 둘 모두에게 나는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을까?를 자문한다면 무기력해진다. 무기력? 감각에 기대는 행복과 불행은 결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서 생산과 소비 활동을 하는 것 같아 여러 생각이 든다.
또한 나는 노력을 통한 성취도 그 이면에는 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표현처럼 나는 과정에서만 발버둥 칠뿐 결과에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관계를 통한 행복과 불행에서는 얼마나 무기력 한가? 의지할 수 있는 관계는 기적이고 고통을 동반하는 관계는 즐비하다.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다.
결국엔 나만 혼자 유유히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일까? 행복과 불행을 통제할 수 없어 고민하는 나는 비정상일까? 나에게 행복과 불행에 있어서 고통보다 힘든 것은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이다. 나는 이런 삶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다. 그래서 오늘도 세상의 불확실성 앞에 나는 한 움큼 움츠러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