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by 진티엔

오랜만에 리틀 포레스트 한국판을 봤다. 그중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재하는 꽤 멋진 주사를 갖고 있다.
그는 해답을 갖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난...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왔다.

겨울만 보내고 올라가기에는 너무 억울하잖아.
[중략]
긴 겨울을 뚫고 봄의 작은 정령들이 올라오는 그때까지 있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나도 떠밀리듯 취업 준비를 하다가 도망치듯 떠난 적이 있어서 공감이 가는 대사였다. 그리고 나에게도 물어보게 되었다. '해답을 찾았니?'



사실 쉬기로 선택하고서도 자꾸만 머릿속에 '도망친 곳엔 낙원이 없다'라는 말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선택을 하고서도 지금 내가 틀렸다고 하는 목소리가 들려서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래서 나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 답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


하지만 다행인 건 아니었다. 해답을 찾았다.






우선 나는 쉬기로 결심하기 이전 시간에 인생을 이루는 3가지 요소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 세 가지 요소는 일/공부, 나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이다. 일/공부에서는 지금까지 열심히 해온 것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고, 나와의 관계는 서먹서먹했다. 좋은 결과를 낼 때만 좋아하고 안 그런 때에는 소원했다. 타인과의 관계는 잘 이어오던 관계들이 갑작스레 무너지거나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전과 같이 3가지 주제를 대하면 안 되겠다고 깨달은 것 같다. 그러므로 쉬면서 일/공부, 나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일/공부


이것은 최근에서야 해답을 찾은 것 같다. 바로 결과를 미리 걱정하고 고민하기보단 일단 시도하고 경험해보기. 입시 실패가 너무 뼈아픈 경험으로 남은 나머지 대학에서는 잘할 수 있는 것 위주로 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시도나 도전을 해야 할 때 하지 않았고, 이후에 쉬면서도 결과가 너무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 윤계상 님의 인터뷰를 우연히 읽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면서 '이게 바로 내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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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안 좋은 결과가 물론 먼저 상상되지만 그래도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대로,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좋고, 또 몸에 에너지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원하는 기회를 얻기도 하고 좋은 무언가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공부 파트에선 일단 시도하고 경험하기라는 해답을 얻었다.




나와의 관계



앞서 나와의 관계에선 결과가 좋을 때만 관계가 좋고 그렇지 않을 때는 서먹서먹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사실 인생을 살면서 결과가 좋은 순간이 많겠나, 그렇지 않은 순간이 많겠나. 근데 나는 반대로 나를 대하며 힘들게 했다. 그래서 결과가 평범하거나 좋지 않은 순간에도 나와 잘 지내는 연습을 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이다. 행복이라는 게 별거 없는 것 같다. 그냥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도 마냥 안 좋은 감정에 빠져있기보단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며 조금 더 부드럽게 그 시기를 보낼 수 있다. 그렇게 과정에 있는 지금 이 순간에서 즐기려고 노력했다.


이때 내가 좋았던 순간을 기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는 일기장에, 가계부에, 사진첩, 블로그에 좋았던 순간을 글로,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러면 그 좋은 감정이 기록들을 볼 때마다 되살아나서 흐뭇하고 또 그게 나에 대한 자료가 돼서 관련된 다른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여전히 결과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는 맘이 아프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기를 맨몸으로 버틴다는 생각은 안 든다. 내가 나를 지켜줄 거라는 생각이 있다. 이 느낌이 드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나와의 관계에서 내가 찾은 해답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이다.




타인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면서 나와의 관계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은 아무리 잘해줘도 그 의도를 오해하거나 알지 못하고 또 어떠한 이유로든 내 곁에 영원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원히 내 곁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굉장히 열심히 해답을 찾아다녔다.


우선 나는 타인에게 잘~ 해줘서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지만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인은 알게 모르게 많이 희생을 하면서 타인을 관찰하고 그에게 좋을만한 것을 주었다. 그렇게 타인에게 에너지를 쏟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타인의 사랑이라는 게 내가 애쓴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 마음대로 내게 주어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제 어찌할 수 있는 내 쪽에 사랑을 쏟는다. 나는 관찰력이 좋고 섬세하다. 그런 능력을 타인에게 쓰지 않고 나에게 쓴다. 내 필요를 읽어주고 내 소망을 봐준다. 나의 감정, 생각을 읽어주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선물한다.


앞서 일/공부 파트에서 일단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용기 낸 경우, 나를 칭찬하기 위해 선물을 준다. 결과에 상관없이. 이렇게 나라는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랑 같이 있는 게 좋아진다. 과정에서 노력한 걸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고, 진짜 필요로 했던 걸 주는 사람이 생기고, 내 감정과 생각을 파악해서 그에 맞는 무언가를 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생긴다. 든든한 내 편이 생긴 느낌이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에선 타인에게 쏟을 에너지를 나에게로 돌리기라는 해답을 얻었다.






이젠 '도망친 곳엔 낙원이 없다'라는 생각에 반박할 수 있을 것 같다. 낙원이 있다고.


나의 지난 방황이 헛되지 않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