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회사 내년 말고 낸중에 가면 안돼?"
두진이는 이제 우리 나이로 6세가 되었다. 제법 논리적인 언어 구사를 한다. 오늘은 동생이 물을 쏟아 엄마가 짜증을 내니(;;;;) "엄마 화내면 안되는거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라고 말하며 나를 당황시켰다. 그런 두진이가 자주 하는 말.
"내년 말고 낸중에."
가끔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두진이에게 이야기를 해줬다.
"엄마가 지금 잠깐 너희를 돌보려고 회사를 안 가는 거고 1년이 지나면 다시 회사에 가야해."
시간 개념이 정확치 않은 두진이는 1년, 내년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그저 엄마가 회사를 다시 가야 한다는 것이 싫을 뿐.
"엄마 내년에는 회사를 가야 해."
그때부터 두진이는 계속 말했다.
"엄마, 회사 내년 말고 낸중에 가면 안돼?"
'낸중에'는 구미 할머니한테 배운 사투리다. 나중에라는 뜻. 어린 마음에는 '내년'보다 '나중'이 훨씬 먼 일로 느껴지는 것일테다. 그때마다 낸중에라고 말하는 게 너무 웃겨서 막 웃으면서 "내년은 아직 많이 남았어. 나중보다 내년이 더 먼거야~"라고 말했지만 두진이 입장에서는 무슨 말인지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새해 달력이 생기자 두진이와 함께 8월 15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내 복직 날짜다.
그리고 설명을 해줬다.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 엄마 복직 날짜가 다가오는 거라고. 금방 울듯하는 두진. 그래도 난 미리 알려주는 게 닥쳐서 알려주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혼자서 (속으로) 합리화했다.
처음으로 킥보드타던 날, 좌절한 두진
두진이를 낳은 후 1년이 지나고 복직하기 직전 어린이집에 맡겼던 날이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이집 적응 훈련을 한다고 갓 돌이 지난 10kg의 아이를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곁에 놓고 나온 날. 어린이집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는 잘 있을 것이라고, 불과 한 시간 후에 다시 데리러 올 것이라고, 더 일찍 어린이집에 오는 아이들도 많다고 자기 위안을 위안을 했지만 떨어지는 눈물을 막을 순 없었다.
엄마 옆에 더 있고 싶어 하는 아이를 떼놓고 출근하던 복직 적응기. 아이를 돌봐주시던 친정엄마도, 출근하는 나도, 엄마랑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도 아침마다 눈물바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우는 아이의 소리를 들을 땐 '아 회사에 늦는다고 말해볼까', '아 지각하더라도 한번 안아주고 갈까', '아냐, 적응해야지 어쩔 수 없어'의 반복이었다. 엄살부리는 걸 싫어한다며 짐짓 태연한 척 하며 출근했지만 늘 마음은 요동치는 바다같았다. 어떨 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고 "아이는 누구한테 맡겼어?"라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어린이집과 친정엄마요"라고 대답하면서도 괜히 마음속에 칼날이 서기도 했다.
누구 잘못이 아닌데 괜히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제일 괴로웠다. 아이를 낳아놓고 방치한 것만 같은 기분, 아이를 뱃속에 품었던 내가 그 모든 걸 떠안아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뉘앙스를 느끼면 괜히 분노했다. 그러면서도 뱃속에 있던 아이를 제대로 품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면 내 일상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느꼈고 다른 삶을 상상하며 자주 도피했다. 친정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제대로된 역할행동을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면 괴로웠고 왜 내게 이런 많은 일들이 부여돼 있나 생각이 들면 억울했다. 회사에서라도 욕먹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 세뇌는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자주 울었고 자주 화를 냈다.
또다시 복직을 해야 한다. 이제는 다리에 매달릴 아이가 둘이다. 게다가 한 명은 자신의 마음을 논리정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두진이는 36개월까지 일주일 두세번쯤 깨서 한 시간을 울었다. 무서운 꿈을 꾼 건지, 무엇에 놀란 건지 표현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도대체 왜 그러니" 어르고 달랬다가 화를 냈다가 새벽 세네시가 된 것을 보면 '내일 출근은 어쩌나'하며 아침을 맞기도 여러번.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와의 분리에 대한 공포와 상처를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해결하려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하겠지. 두렵다.
이제 육아휴직 기간이 절반 남았다. 지난 8개월, 아이를 옆에서 키운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됐다. 아이의 밥을 차리기 위해 반찬을 하고 아이가 책을 가져오면 읽어주고 아이가 종이접기책을 가져오면 같이 종이접기를 하고 아이가 졸려하면 재워주고. 둘째가 첫째 장난감을 망가뜨리면 중재하고 또 혼내기도 하고. 아침 먹고 이유식 만들고 조금 놀다가 또 점심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또 저녁 먹고 목욕시키고 재울 준비하고 재우면 하루가 끝난다. '아 언제 이렇게 하루가 금방 갔지' 싶지만 아이와 살을 부대고 안고 뽀뽀하고 '사랑해' 귓속말을 하는 순간순간은 정말 행복하다. 어떤 남자랑 이런 연애를 해봤을까 싶을 정도로.
나도 나지만 아이가 행복해하는 게 눈에 보인다. 하루에도 몇번씩 "엄마가 좋아", "엄마 사랑해", "엄마랑 노니까 재밌어"를 말하는 아이다. 한번은 회사 다닐 때 입었던 패딩을 입으니 표정이 어두워진다. "엄마 회사가는거야?" 아이는 내가 회사 가던 풍경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 것일테다.
그런데 복직하면 이 행복을 아이가 잃어야 한다. 아이는 내 복직 후 일상을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첫째는 엄마와 하루종일 놀다가 밤에만, 주말에만 놀아야 한다는 것에 적응할 수 있을까. 둘째는 첫째처럼 무사히 어린이집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아마 나는 또 복직 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울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엄마, 회사 내년 말고 낸중에 가면 안돼?"라는 말이 귀에 둥둥 울리겠지. 괜찮다고, 아이들은 마을이 키우는 것이라고, 누구보다 든든한 친정엄마가 나보다 아이들을 다 잘 봐주실 것이라고 말해도, 아이들과 내가 지금처럼 오래 함께 할 시간은 또 오기 힘들 것이다. 그것이 슬프다. 아이들이 이렇게 엄마아빠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짧은데. 이렇게 몸으로 부때껴서 안아주고 업어줘야 하는 시간은 짧은데. 왜 나는 너희들을 이렇게 빨리 두고 나가야 하는 거니.
그러면서도 다시 일할 것이 걱정된다. 회사 일에 적응하고 또 돌아와서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그리고 내일 발제를 걱정하는 삶. 주말에는 주중에 부모 품이 고팠을 아이들이 매달릴 것이다. 나를 위해 쉬는 시간은 이제 사치가 됐다. 그러면서도 일과 아이의 균형점이 어디인가 고민하느라 '나'는 잊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오늘 세아이 워킹맘이자 공무원인 30대 여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다. 아이를 셋이나 두고 주 70시간 일을 했다고 한다. 70시간을 5일로 나누니 14시간, 7일로 나누니 10시간이다. 무슨 일을 그리 많이 했을까. 아니면 욕먹지 말아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던걸까. 집에 가면 아이들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소진되면서도 몰랐을 것이다. 정말 끔찍하다. 끔찍하다. 끔찍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더이상 이렇게 살지 말자고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내 자리에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