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처리하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 보았다. 나와 디라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이 적혀 있다.
초등학교 때 선생임이 수업 시간에 가족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동생을 그렸다.
지금 책상에 앉아서 가족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와 디라스를 그린다. 그리고 더 그릴 사람이 없다. 다리스에게 그려보라고 했더니 나와 디라스를 그린다. 엄마와 아빠를 그려보라고 하자 왠지 어색하다고 한다.
형의 가족 속에는 내가 있을까? 동생의 그림 속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있지만 내 그림 속에는 없다.
뭔가 생각이 나서 주민자치센터에 다시 갔다. 신분증을 내밀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밝힌 후 아버지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그 아래로 삼형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디라스는 없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려는데 시어머니가 시누이네 가족을 불러서 불편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어머니와 그녀는 가족의 범위가 달랐던 것이다.
그녀는 오랜만에 가족끼리 여행을 떠났다. 그 사실을 알고 시아버지가 서운한 마음을 문자로 보냈다.
'나는 너희들에게 어떤 의미냐?'
나는 가족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그분은 며느리의 입장에서 가족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가족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형도 동생도 나도 그릴 것이다. 며느리들도 그리고 조카도 그릴 것 같다. 조카는 할아버지를 그릴까? 어머니의 가족 그림은 아버지와 같을 것이다. 자식보다 부모가 헤어지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자식에 대한 집착은 들어보았어도 부모에 대한 집착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는 가족이 더 있었다. 이름만 있고 주민등록번호가 지워진 사람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헤어지려야 헤어질 수 없는 가족이라고 가족관계증명서가 말하는 것 같았다.
집안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빈 종이를 주고 가족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그림 속에 그려진 사람들까지가 가족이 아닐까 하고 묻는다. 그러면 친척들끼리 기대하는 바가 왜 다른지 좀 선명하지는 것 같다. 그림을 그려 놓고 보면 실망할 필요가 없다.
중학교 때 한 친구가 가족관계 조사서에 ‘똘이, 4살’이라고 적어서 냈다. 그걸 본 담임 선생님이 웃으면서 ‘부모님 사이가 좋아서 늦둥이를 두셨구나?’하고 물었다.
우리는 웃었는데 민서라는 친구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뭐냐고 우리가 쳐다보았더니,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라고 했다. 그때는 이상했는데 그 친구가 시대를 앞서 간 것 같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지켜야할 생명의 범위를 넓혀 왔다고 한다. 강아지를 가족의 범위에 넣은 것은 그 동물을 인격체로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많은 학생들이 가족 관계 조사서에 반려 동물의 이름을 적는다.
우리의 고양이는 우리의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