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히말라야에서 비박을 준비하는 남자를 만났다. 비박이란 텐트 없이 침낭으로 잠을 자는 여행의 방식이다.
그에게는 가이드도 포터도 없었다. 간단한 코펠이 전부였다. 허가를 받지 않고 히말라야에 온 사람이었다. 허가를 받지 않았기에 그가 여기 있다는 것을 히말라야 관리인들은 알 수 없다.
책 속에서 그를 본 가이드가 말을 한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혼자 여행을 하면서 무명봉을 올라요. 사고가 나서 죽게 되더라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죠." 그가 거기 있는 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런 사람들의 시신이 산에서 우연히 발견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지."
디라스에게 말하자 디라스도 그 남자를 읽어 보았다고 한다.
"나는 좀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그랬다고 하니까 조금은 매력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이제 그런 꿈을 이루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떤 꿈은 이루어 가는 과정도 힘들지만 이루고 난 다음 더 힘든 여정이 이어진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 생각이 났다.
눈을 끓이면 시커멓게 변한다. 이유를 아는데도 신기하다. 하얀 꽃잎을 따다가 손으로 짓이기면 물이 나오는데 하얀빛은 사라지고 없다. 보라색, 노란색 꽃잎은 보라색, 노란색의 물기를 남긴다. 사라져버린 하얀 빛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신기루 같은 그 빛이 무명봉 같은 것이 아닐까.
물이 없어서 히말라야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눈을 코펠에 넣어 녹였다. 먼지와 검불이 가라앉아 있는 탁한 물이 완성되었다. 모아온 눈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부피다. 남자가 목에 두르고 있던 천을 풀어 물을 걸러내려고 할 때 여자를 바라본다..
"이거 깨끗한 거예요."
목에 두르고 있은 지 15년은 되어 보였다.
눈의 핵이 먼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을 녹인 물이 검은빛을 띠는 것은 흙이나 다른 먼지가 섞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먼지 때문에 그렇다. 눈이 되려면 수증기가 먼저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하늘에서 수증기는 먼지를 붙든다. 먼지를 붙들지 못한 수증기는 땅으로 내려오지 못한다. 그렇게 뭉쳐져서 기온에 따라 눈이 되기도 하고 비가 되기도 한다. 먼지 없이 눈과 비가 될 수 없다. 눈과 비의 핵이 먼지인 것이다.
어느 날 눈이 내렸다. 주차해둔 차에 눈이 쌓였고 다음 날 날이 밝아서 쨍쨍하게 말라버렸다. 차 여기저기에 흙이 묻어서 지저분해졌다. 그 지저분한 먼지들이 지난 밤 내린 눈의 핵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핵도 먼지 같은 걸 거라고 생각한다. 거기 뭔가가 잔뜩 매달려 있는 거다. 비가 됐다가 눈이 되었다가.
한 사람이 죽고 난 다음 그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살아 있는 동안 그는 흰빛이었는데 그의 하얀빛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사라져버린 하얀빛을 기억해야 한다고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녹아버린 눈은 목에 두른 천으로 걸러내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시커먼 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