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돼지고기를 사러 가면서 ‘피그(pig)’라고 해야 할지 ‘포크(pork)’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정육점 앞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고기를 사는지 지켜본 다음 ‘피그’라는 단어를 써서 아저씨에게 보여주었다. 아저씨가 나와 종이를 몇 번 번갈아 보는 동안 나는 또 ‘피그’하고 몇 번 발음해 보았다. 영어를 읽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들고 있던 칼을 놓고 아저씨는 뒤에 있는 문 안으로 사라졌다 장성한 아들과 함께 다시 등장했다. 아들이 쪽지를 살펴볼 때, 나는 오른손을 살짝 오므려, 나팔을 만든 자세로 ‘꿀’, ‘꿀’ 천천히 발음했다. 그러나 자신은 없었다. 마케도니아의 돼지도 그렇게 우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미국 돼지는 ‘오잉 오잉(oink oink)’하고 울었다. 아들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아마도 마케도니아의 돼지도 우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그가 내게 얼마나,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물 위에 글씨를 쓰듯 3 0 0 g, 하고 허공을 휘저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한쪽에 놓여 있는 고기를 잡아 한 덩이 쓸어냈다. 저울에 올려놓고 이 정도,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저울의 눈금을 확인한 다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고기를 잘게 한 번 썰었고 나는 한 번 더 잘게 썰어 달라는 시늉을 했다. 아저씨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는 종이로 고기를 쌌다. 종이에 금방 핏물이 스며들었다.
우리는 밥을 해먹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쌀도 사고 양파도 샀다. 동유럽의 음식이 너무 짰기 때문이다. 음식점마다 경쟁적으로 소금을 사용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괜찮겠지 했는데 소금을 한 바가지 부은 브로콜리 수프를 맛보았다. 먹는 게 일이 되어버렸다. 지친 우리 몸을 음식으로 회복할 수 없었다.
음식이 왜 이렇게 짠 걸까.
전기레인지에 밥을 올려놓으며 제이에게 물었다. 부지런히 제이가 그것에 대해 공부하는 동안 솥에서는 쌀이 튀어 오르는 소리가 났다. 쌀이 작아서 그런가? 내가 고른 마케도니아 쌀은 유독 크기가 작았다. 아니면 솥이 얇아서 그런가. 어쨌든 나무 타듯 튀어 오르는 그 소리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잠시 후엔 타는 냄새가 났다. 이렇게 빨리 불을 줄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밥물이 끓어 넘쳤다. 뜸을 들이기로 했다. 불을 끄고 전기레인지에서 솥을 내렸다. 뜸은 스스로 익는 시간이다. 끓어오르도록 내가 도와주었으니 나머진 너에게 맡긴다. 그런 눈으로 잠시 솥을 바라보았다.
- 아무래도 귀족들과 그들의 요리사 때문인 거 같은데.
제이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찾아낸 자료로 이야기했다.
- 귀족들이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소금이었대. 음식이 짜면 짤수록 나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거지.
손님을 초대해 놓고 자랑이 하고 싶을 때 귀족은 자신의 요리사에게 더 많은 소금을 넣을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귀족사회가 붕괴되고 서민 사회에 흡수된 요리사들은 지난 시절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고 서민들 역시 귀족들의 흉내를 내고 싶어 요리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핏기 가득한 종이를 풀어 고기를 팬에 올렸다.
고기는 금방 팬에 달라붙었다. 겉만 타고 속은 익지 않을 것 같았다. 팬의 중심은 코팅이 벗겨져 있어서 고기를 가 쪽으로 몰아야 했다. 흡반이 달린 것처럼 고기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내 눈에 고기 조각은 커 보였다. 한 번 더 잘라 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쑥스러워 그러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정말 돼지고기일까 의심했는데 다행히 돼지고기 익는 냄새가 올라왔다. 양파를 쓸어 넣고 작은 고추장 한 튜브를 넣어 버무렸다. 아시아나가 고마웠다. 기내식을 먹을 때 제공되었던 작은 고추장 듀브를 우리는 각자 하나씩 챙겨왔다. 덩치 큰 고기가 익지 않았을까 봐 중간중간 칼로 썰어보았다. 생각보다 잘 익었다. 고추장이 적은 것 같아 시장에서 제이가 골라온 소스를 섞었다. 먹을 만했다.
- 우리가 먹는 것은 바다소금이고 유럽 사람들이 먹는 것은 바위소금이라는데. 바위 소금이 바다소금보다 더 짜대.
제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밥상을 차렸다.
- 이 나라의 물은 석회수인데 그것을 좋게 만드는 것이 소금이라네.
- 확실해?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며 내가 되물었다.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였을 때 먼지 같은 하얀 가루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솥에 문제가 있나 해서 세제로 잘 씻은 다음 다시 끓여보았다. 여전히 하얀 가루가 떠올랐다. 찜찜해서 차를 우릴 수가 없었다. 차를 마실 수 없다는 사실보다는 하얀 가루가 도대체 뭘까 하는 궁금증이 마음을 더 답답하게 했다. 석회수였구나 라고 알게 되자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알렉산더 아저씨가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어 정원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 마셨던 것이 떠올랐다. 그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눈 덮인 산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 이 물은 저기서 흘러 내려온 거야. 그냥 마셔도 안전해. 우리는 물을 사 먹지 않아.
정원에서 그런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 신기해서 나도 물을 마셔보았다. 배탈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 물은 수돗물이 아니라 지하수였다. 머리를 감으면 비누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그 물 말이다. 누군가는 내가 지난 밤 보았던 그 하얀 가루가 몸에 좋은 성분들이라고 하는데 그건 사실인지 알 수가 없다.
제이도 나의 되물음에 확신이 없는지 이렇게 말했다.
- 인터넷에 누가 그렇게 올려놨어.
뜸 들인 솥의 뚜껑을 열었더니 하얀 쌀이 잘 익어 있었다. 돼지불고기와 밥밖에 없었지만 꽤 근사한 밥상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