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의 소피아
소피아 아주머니가 저녁을 하는 동안 우리는 9번 버스를 타고 소피아 대학 근처에 갔다.
거기서부터 소피아 광장을 향해 걸었는데 지나고 보니 소피아에서 봐야할 것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다. 구 공산당 본부와 국립미술관, 대통령 궁은 그 길 위에 있었고 성페트카 지하 교회는 소피아 광장 근처에. 바나바시 모스크는 광장에서 중앙역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되었다.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성당이나, 성 소피아 교회, 성 니콜라이 교회는 그 길에서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금방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소피아 대학역에서 세르디카역, 단 한 정거장 거리에 이 모든 것이 있었다.
우리는 2차 발칸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 불가리아라는 것을 떠올렸다.
발칸 지역에서 터키를 몰아냈던 1차 발칸 전쟁이 끝난 후 마케도니아의 대부분을 세르비아와 그리스가 나눠가지자 불가리아는 불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나라에 선전포고를 했는데 전쟁이 시작되자 루마니아와 터키도 불가리아를 공격했다. 불가리아는 전쟁에 패했고, 많은 땅을 잃어서 지금의 불가리아는 그때의 불가리아보다 훨씬 작다.
- 왜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를 자기 땅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제이가 물었다.
- 마케도니아인들이 서부 불가리아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대. 그러니까 자기네 땅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 왜 그렇게 생각한대?
- 자세한 건 나도 모르지만, 마케도니아의 언어가 서부 불가리아 방언과 비슷하대.
세르비아와 그리스도 마케도니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했다.
나름대로의 근거들은 있었다.
마케도니아 인들은 과거 세르비아인으로 불리었다. 14세기 듀산은 마케도니의 오흐리드를 수도로 삼아 나라를 통치했다. 그는 세르비아의 황제였다. 그때 마케도니아안이 세르비아인으로 동화되었다고 세르비아는 주장한다.
고대 마케도니아인들은 그리스인이기도 했다. 그리스의 문명에 모든 것을 영향받았다. 마케도니아, 라는 단어의 뜻은 ‘키 큰 사람’인데 이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단어의 유래만 봐도 마케도니아는 틀림없는 그리스의 일부라는 것이 그리스의 주장이다.
하지만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던 고대 마케도니아 사람들과 중세 이후 마케도니아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다. 6세기 정도에 남부 슬라브족들은 이곳에 살던 키 큰 사람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다. 그 이후 마케도니아는 ‘키 큰 사람’이 사는 나라가 아니라 그냥 그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어쨌든 마케도니아의 입장이 제일 중요한다.
그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앞의 나라들과 이야기가 다르다. 마케도니아는 '나는 나다'는 입장이다. 세르비아인도 그리스인도 아니며 고대 마케도니아 때부터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고 주장한다. 마케도니아어가 불가리아의 방언이라는 둥, 세르비아어와 비슷하다는 둥 하지만 마케도니아는 자신들의 언어가 독자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마케도니아는 몸도 마음도 어디에 줄 생각이 없는데 주변국들이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불가리아는 최근 수십 년 전만 해도 공산국가였다.
나는 그 흔적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은근히 구 공산당 건물에 걸려 있을 붉은 별을 기대했다. 역시나 그 별들은 온데 간데 없고 대신 삼색의 국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누구나 동유럽이 처음이라면 이 건물 앞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바라보고 서 있으면 그 규모와 위엄에 몸과 마음이 압도당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광장에 이르자 성 소피아 동상이 월계관을 쓴 채 내게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긴 한 때 레닌이 서 있던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