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이스탄불
올해의 마지막을 이스탄불에서 홀로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유랑’을 지켜보고 있던 제이가 함께 새해를 맞이할 사람들을 찾는다는 글이 꽤 많다고 말했다.
나는 제이를 보스포르스 해협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에 데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이가 거절했다. 늦은 밤 이스탄불을 돌아다니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할 것이라고 했다.
나도 이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비까지 내리는데 불꽃놀이가 진행될까 하는 의심도 있었다.
한 여행자가 번개를 제안했는데 오랫동안 거기에 달린 댓글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베트남의 북부 오지인 박하에 갔을 때다. 거기서 무려 일주일이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하루 이상을 머물지 않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무척이나 긴 시간이었다. 작은 동네라 어디 더 가 볼 곳도 없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호텔에서 주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었다. 그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번개를 제안했다. 베트남 여행자 카페에 내가 올린 글은 이것이었다.
- 박하에 한국 사람 없나요?
나는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내 글에 달린 단 하나의 댓글을 발견했다. 내 질문만큼이나 짧은 말이었다.
- 거기가 어딘가요?
나는 ‘리스본행 야간 열차’를 읽고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조금씩 소설을 읽어나가는 것뿐이었다. 이 일은 내게 진지하고도 엄숙한 일이었다. 차를 마시면서 내가 파악한 인물에 대해 제이에게 들려주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때는 조금 덜 외로운 기분이었다. 마치 그런 말들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고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내 임무를 수행하게 할 수 없게 끔 만드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란 얼마나 지겨운 일이었을까. 독일에서만 200만부가 팔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200만 명이란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일까 궁금해졌고 이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200만 개의 얼굴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제이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찾아내었다.
이번에도 사기꾼에 대한 이야기였다. 택시 드라이버 사건 이후 이런 이야기를 잘 찾아내었다.
이스탄불을 방문한 한 여행자가 터키석을 사러 갔다. 그는 그랜드 바자르에 한국 여자와 결혼해 장사를 하는 터키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을 찾아갔지만 엉뚱한 집을 방문하고야 말았다. 물건을 사고 돌아가던 여행자는 우연히 그 한국 여자가 있는 가게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 가게는 물건을 산 가게 바로 옆옆 가게였다. 그는 한국인에게도 물건을 팔아줄 마음으로 터키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이 산 것을 보여주고 이게 터키석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그 터키석은 터키석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한국 여자와 결혼한 터키 남자는 터키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한국 여자는 여행자를 위로했다. 하지만 돈을 돌려받을 수는 없었다.
터키 남자와 결혼했다는 한국 여자가 대신 따져줄 수 있지 않았을까?
위로만 주고 적극적으로 여행자를 돕지 않은 한국 여자에 대한 서운함을 제이는 그렇게 표현했다.
순진하게 생각하면 맞는 말이었다. 터키 남자와 결혼한 한국 여자라면 어느 정도 터키 말을 할 수 있었을 테고, 그 여자가 제대로 말을 못한다면 남편이 직접 나서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는 셀축에서 터키인에게 성추행을 당한 한국 여자를 끝까지 도와주었던 터키 남자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셀축에서 한국여자와 결혼해 작은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터키석을 파는 장사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랜드 바자르의 장사꾼들은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끼리 길드, 라는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길드란 쉽게 말해서 계모임이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이익을 도모한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협력해야 할 사람들끼리 서로의 단점을 지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랜드 바자르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로 단결해 살아왔는지는 전통적으로 그들이 유지해왔던 길드의 종류를 보면 알 수 있다.
좀도둑과 소매치기들도 길드를 만들어 운영해 왔을 정도다. 내가 소매치기라면 소매치기의 이익을 위한 협회 같은 것을 쉽게 만들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골목에서는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려왔고 마지막 신호와 함께 폭죽 소리가 났다. 대단한 소리는 아니었다.
새해가 아무렇지도 않고 정말 심심하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