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내릴 수 없어요

루마니아 티미쇼아라에서 브라쇼브

by 카렌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조금씩 책을 읽었다.


‘난 농부의 딸이라 농부의 아들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어요. 낭만적이 아니지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 같다.

기차는 끝없는 들판을 달린다.


눈이 두텁게 쌓인 들판이었고 군데군데 양들이 돌처럼 모여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목동과 개는 그 주변 어딘가에 서 있다. 겨울 들판에도 뭔가 먹을 게 있는 모양이다.


목동의 삶은 행복할까.


조용히 양떼를 지키는 목동을 보면서 생각했다. 특별한 걱정은 없을 것 같았지만 멀리 외따로 떨어진 집을 볼 때마다 그 고독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우리가 외로움이라고 말하는 그게 도대체 뭐지? 단순하게 다른 사람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아. 혼자 있으면서도 전혀 외롭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울 때가 있으니까’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 속에서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 외롭다.


언젠가 친구에게 말했더니

- 여자 친구가 없어서 그래.

라고 말했다.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여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여전히 외로웠다. 결혼을 안 해서 그렇다고 하기에 결혼도 했다. 그런데 가끔 외롭다. 이제는 아이가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아이가 생기면 외로움이 사라질까.


‘외로움은 다른 사람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남자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타인의 부재가 외로움이라면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외로울 때를 설명할 길이 없다.


아침 8시 20분에 출발한 기차는 오후 5시 54분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내릴 수 없다. 가끔 기차 끝에서 끝까지 걸어갔다 오는 것으로 지루함을 달랬다. 기차는 적자를 면치 못할 것 같았다. 오전 내내 내가 본 손님은 다섯이 되지 못했다. 우리 객차에도 우리 말고 손님이 따로 없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퍽이나 유리한 것이었다. 제이는 세 사람이 앉아야 할 의자를 모두 차지하고 다리를 뻗고 누울 수가 있었다.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실려 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피곤한 모양이었다.


지나가는 여자에게 콜라와 샌드위치를 샀다. 심심해서였다.


기차는 브라쇼브로 가는 유일한 직행 노선이다.


다른 기차는 어딘가에서 한 번씩은 갈아 타야 했는데 대기 시간이 너무 길거나 짧았다. 침대도 아닌 의자에 앉아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까, 탈 때까지는 그런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내가 시비유에서 하룻밤 자는 건 어때, 하고 제안했지만 제이가 그냥 가자고 했다.


책을 보다 간들간들 멀미가 나려고 할 때 창밖 풍경을 보면 가라앉았다.


눈꽃 열차가 따로 없었다. 어떤 풍경 속에선 세 사람이 언덕에서 스키를 타고 있었다. 특별한 복장이 아니었다.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스키에 몸을 실었다. 기차도 심심해서 모든 역에 서는 것 같았다. 간이역마다 역무원이 나와서 마중과 배웅을 했다. 손님이 다 탔는지 내렸는지 그런 것을 신호로 주고받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라면 이미 폐쇄되었을 간이역에도 모두 직원이 있었다.


서쪽 하늘에 석양이 물들자 쓸쓸해졌다.


옆에는 제이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내가 있는 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파치마 옆에 누워 숨소리를 듣고 온기를 느껴도, 너무나 외롭다. 이게 뭘까? 과연 뭘까?’


풀리지 않는 문제를 오래 고민하면 사람이 우스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워지지 않기 위해 마흔까지만 사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리스본행 야간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