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이아에서 부크레슈티

시나이아에서 부크레슈티

by 카렌

시나이아 역 안에서 두 명의 여자가 물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젖은 바닥에 발바닥이 닿지 않도록 요령껏 닦고 있었다. 저렇게 바닥 닦는 일로 이 도시에서 살아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을 듣고 나서 제이는 귀족의 후손이었지만 가문의 몰락으로 파리의 청소부가 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아주 즐겼다고 한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누군가가 그에게,


- 한때는 귀족이었는데 어떻게 이 일이 즐거울 수가 있어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아요.


그는 머릿속으로 청소해야할 구역을 나눈 다음 순서를 정하고 차례차례 목적을 달성하는데 큰 기쁨을 느꼈다.

- 사실 노동은 자아실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어.

제이가 말했다.

- 그 말 재밌네. 누구 생각이야?

- 옛날 귀족들. 그래서 귀족은 되도록 일을 안 했잖아. 일하고 싶을 때만 일했지. 옛날에는 노예들만 정규직이었고 귀족들은 비정규직이었어. 요즘엔 정규직이 되고 싶어서 난리들이지.

- 난 귀족이 적성에 맞는데 시대를 잘 못 타고 났군.

내 이야기를 듣고 제이가 웃었다.

- 일을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건 좋은 게 아닌 것 같아. 일은 여가를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밤낮으로 회사와 연결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많은 것 같아.


한 유명 프렌차이즈 카페의 매장을 관리하는 내 친구가 그랬다.


그는 밤 열 시가 다 되어 술자리 모임에 와서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본사로부터 업무 지시를 계속 받고 있었다. 핸드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에게 이유를 묻자, 문자가 울린 후 몇 분 내에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다고 했다. 가장 짜증이 날 때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문자를 받는 거라고 했다.

- 노동이 중요하다고 우리의 머릿속에 심어준 사람이 있는데 누군지 알아?


나는 몇 명의 이름을 대다가 결국엔 정답을 맞추고 말았다.


- 마르크스.

- 맞아. 근데 마르크스의 사위가 참 재밌어. 그가 책을 썼는데 제목이 ‘게으를 권리’였어. 그 책을 썼다는 이유로 그는 장인에게 미움을 받았지.


부크레슈티 행 기차가 출발하자 곧 눈앞에 설국이 펼쳐졌다.


오늘은 안개가 많아서 정오가 되었는데도 시야가 흐렸다. 앞에 앉은 두 노인은 십자말 퍼즐 같은 것을 했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제이의 얼굴에 가닿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몇 번 커튼을 쳤다 걷었다 했다.

나는 수첩을 펼쳐 제이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그리스 여행에 대한 일정과 봐야할 목록들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수첩에는 그렇게 적혀 있지만 우리는 그리스가 아닌 루마니아에 와 있었다. 그래도 제이는 날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 넌, 융통성 있는 남자구나. 자기 것을 포기할 줄도 알고.

그래서 내가 겸손히 응대했다.

- 줏대가 없는 것은 아니고?

부크레슈티가 다가왔다.

- 자, 이제 집시를 만날 준비가 되셨나요?

내가 말했다.

루마니아에 가면 집시들이 달라붙어 돈을 달라고 할 것이라는 경고를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그런 집시를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부크레슈티를 두고 한 경고가 아닐까 생각했다.


바깥 주머니에 있는 지갑은 공유하는 것이다.


유럽의 소매치기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갑을 바깥주머니에 넣어 둔 사람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복장을 한 번 점검하고 부크레슈티 역에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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