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이아 수도원

루마니아의 시나이아

by 카렌

조금 더웠던 모양인지 제이는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다.


열심히 품고 자던 코끼리(물주머니)도 저리 내던져 두었다. 난방이 시원치 않은 곳에서는 대접을 받았는데 좋은 곳에 들어오자 코끼리는 귀여움을 받지 못했다. 상황이 바뀌면 재능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자고 있는 제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 산책 가지 않을래?


몇 번 그렇게 말했더니 제이가 눈을 떴다.


신 귤을 까서 입에 넣어 주었다. 얌전한 고양이처럼 오물거렸다. 두 번, 세 번 넣어주자 눈빛이 밝아졌다.


괜찮다고 했지만 시나이아 수도원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나이아에 와서 시나이아 수도원을 안 보고 간다는 것이 이상해서였다. 이 도시의 이름이 시나이아인 것도 그 수도원 이름 때문인데 말이다.


시나이아가 산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하자, 제이는 눈 덮인 산을 가리키면서 저건, 부체지 산이잖아 하고 말했다.


- 시나이 산은 이집트에 있는 산이야.

- 근데 왜 그 산이 여기 와 있어?


나는 미하이 칸타쿠지노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를 소개했다. 그는 시나이 산을 순례하고 돌아와 이 곳에 수도원을 지었다.


그 산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10계명을 받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가 다녀온 곳이 그 산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산이라고 주장하는 곳이 여럿 되기 때문이다.


수도원 안의 성당에는 성서의 내용을 담은 프레스코화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어제 나는 그것을 혼자 보고 왔다. 성서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림의 형식이 마음에 들었다. 벽이 부서질 때 그림도 함께 부서진다. 그림이 훼손되면 벽도 마찬가지. 그게 바로 프레스코화였다. 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 물감이 벽에 스며들게 했기 때문에 가능한 형식이었다. 그러니까 혼합물이 아니라 화합물 같은 느낌이었다. 섞여 있는 둘을 원래의 하나, 하나로 나눌 수가 없는 새로운 물질. 간혹 이슬람 문명은 그림을 벽에서 분리할 수 없자 그림 속 인물들의 눈만 파내어 성당을 모욕하고자 했다.


둘 밖에 없는 경건한 어둠 속에서 나는 제이에게 프레스코화의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는 성당을 나와 어둑어둑한 공기 속을 걷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의 어깨에는 노처럼 생긴 긴 물건이 얹혀 있었다. 검은 천으로 몸을 가린 것으로 보아 그는 수사였다. 노의 길이는 수사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북을 치듯 그것을 두드리면서 걷다가 어떤 장소에서는 성호를 그은 다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월정사에서 해가 질 때 스님이 북을 치던 장면이 떠올랐다.


-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을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우리 소원 빌러가자.

어제 보아 두었던 곳으로 나는 제이를 이끌었다.


성당을 나오며 초도 몇 개 샀다. 성냥이 따로 없어 누군가 켜둔 소원을 빌려야 했다. 불붙은 초를 촛대에 꽂았다. 촛대는 넓은 판에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적당한 높이의 물이 채워져 있었다. 초는 수면까지 타다가 수면에 닿으면 잠시 저항하다가 어쩔 수 없이 붙을 놓을 것이다. 심지에서는 타닥타닥 나무 튀는 소리가 났다.


촛불을 한참 바라봤다. 촛불 앞인데도 나는 빌어야 할 소원을 찾지 못했다. 불가리아에서는 더 많은 촛불을 밝혔는데도 아무 것도 빌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대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너무 심심한 건 아닌가 생각하다가, 그럼 뭐가 필요할까 고민하다가, 빌어서 이루어지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불공평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는 사이 환한 촛불이 내 속으로 옮겨와 붙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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