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부크레슈티
길을 물을 때 원칙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원칙이라니. 그런데도 원칙이 필요한가? 사람들은 인생을 치밀하게 계획한다는 것을 그 여행자를 통해서 알게 된 것 같다. 그녀는 길을 물을 때 원칙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원칙은 이런 거였다.
남녀가 함께 있거나 가족들과 함께 있는 사람이거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에게만 묻는다. 특히 그녀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은 절대 나쁜 사람일리 없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의 전남자 친구가 개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녀가 절대 길을 묻지 않는 사람은 혼자인 남자이거나, 혼자인 여자였다. 그래서 내게 길을 묻는 사람들이 없었나? 나는 혼자 했던 여행을 되짚어보았다.
- 왜요?
- 혼자인 사람들 중에는 위험한 사람들이 많아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내가 위험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내게 길을 묻는 사람들이 없었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편견을 깨는 것은 원자를 쪼개는 것보다 힘들다, 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올랐다.
겨우 차 한잔을 마시고 헤어질 사이에 서로의 생각까지 간섭해서는 안 될 일 같았다. 그래도 내 지난 과거가 ‘위험한 사람’이었다니.
그녀가 또 길을 묻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노인도 있었다.
- 노인들은 영어를 하지 못해서 답답해요.
- 그래도 노인들이 얼마나 친절한데요.
나는 시나이아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어디에 기차가 도착하는지 몰라서 물었을 때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고 우리가 거기가 서자 거기보단 여기 서 있는 게 좋다면서 다가와 다시 길을 안내해 주었다.
물론 노인은 영어를 하지 못했다. 정확한 소통은 되지 않았지만 도움을 받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길을 가르쳐 주었던 노인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친절하고 기쁜 표정이 없었다.
- 노인들이 친절하긴 하죠.
그녀와 헤어지고 우리는 의회궁전을 향해 걸었다.
내게 원칙이 있다면 이런 거였다.
알고 싶은 길이 있을 때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
의회궁전을 향해 가면서 나는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물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 너, 그거 알아?
- 뭐?
- 아는 길을 물으면 사람들은 표정이 밝아져. 질문을 할 땐 아는 걸 묻는 게 중요해. 모르는 걸 물으면 서로 불편해지고 아는 걸 물으면 서로 행복해져.
내가 길을 물었던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제이와 함께여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내가 말했다.
-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 더 친절한 거 같아.
- 알 거 다 알면 친절할 수가 없지.
제이가 맞장구쳤다.
안다는 것은 단점까지도 안다는 말이다.
내가 누군가를 어디 추천해야 할 때 그래서 추천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누구도 내게 그랬을 것이다.
앞으로 모든 인간관계가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낯설었으면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가장 친절한 얼굴만을 보고 헤어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