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을 많이 가린다고 했다.
나도 처음 만나는 사람을 얼굴에 철판 깔고 대할 성격은 아니라 사실 조금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날씨는 쾌청했고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잠시 약속 장소를 착각해 민망할뻔했으나
네가 백여 미터를 걸어와 주어 처음 너의 얼굴을 마주하였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았기에 더욱 어색하게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전에 신비스럽게 보였던 포천의 비둘기낭 폭포가 떠올랐고 이내 내비게이션에 입력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겐 딱 그 정도면 된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우리는 고작 몇 문장으로 자신의 소개를 마치고
아마 어색함을 줄이고자 서로 궁금했던 것들에 관해 물었을 것이다.
정적이 생기려 하면 둘 중 누군가 좀 더 용기를 내어 말을 이어나갔다.
가다 보니 점점 허기가 느껴진다.
정오에 만나 둘 다 점심도 안 먹고 가던 길이라 나는 서울을 좀 벗어나면 먹자고 말했다.
그리고 의정부를 지날 때쯤 우측에 있던 돈까스집이 눈에 들어왔고
순식간에 의견이 일치해 그 집으로 차를 세우고 들어간다.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빈자리는 한눈에 봐도 분명 두 군데나 있었다.
하지만 처음 마주친 종업원은 자리가 없다고 퉁명스레 말하고 그대로 사라진다.
불친절함에 황당함을 느끼고 때마침 걸어 나오던 다른 종업원에게 다시 물으니
역시 눈에 들어왔던 그 빈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그제야 운전하며 슬쩍슬쩍 눈에 들어온 옆모습이 아니라 온전한 너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우린 또 약간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근데 우리의 대화량보다 사람들이 주문한 음식의 양이 더 많았나 보다.
우리가 주문한 돈까스는 아직 나올 생각이 없으니 애꿎은 물만 두어 번 더 들이킨다.
다행히 한참 후에 나온 돈까스의 맛이 썩 나쁘지 않아 어색함이 줄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라 어제 늦게까지 흥에 취했던 건지..
아니면 오후의 햇볕이 따스했던 건지..
너는 낯선 내 옆에서 분명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싫지 않아 가끔 나도 누군가의 옆자리에 탔을 때
과속방지턱을 넘는다거나 급정지할 때 잠에서 깨어버리던 상황을 기억해
조금 더 조심스럽게 운전을 한다.
한 시간을 더 달려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다.
마지막에 길이 약간 헷갈렸으나 덕분에 잘못 들어간 곳에서 목적지를 부감으로 볼 수 있었다.
차를 무사히 주차하고 폭포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감추었다가 하나하나 살며시 보여주는 매력 없이 금세 드러난 폭포의 모습은
내가 보았던 것과 달리 작은 물줄기 하나 흘러내리지 않았고
초록빛들도 계절의 흐름을 따라 바삐 흘러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메마르지 않고 남아있던 작은 물웅덩이는 아직 그 특유의 빛깔을 잃지 않았고
폭포를 감싸 안은 광활한 주상절리 절벽 역시 경이로웠다.
아래까지 내려가 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통제된 지 오래라
제일 마지막 계단의 닫힌 문 앞에서 잠시 둘러보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사진을 좋아한다던 너는 이상하게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내 행동이 괜히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평소와 달리 단 몇 장만 찍는 것으로 구경을 마친다.
다시 계단을 올라와 조금 걸으니
오후 햇볕을 잘 머금고 굽이굽이 흐르는 한탄강의 물결이 보인다.
너는 그제야 한 장의 사진을 담았다.
산속이라 그런지 연신 춥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서둘러 차에 오른다.
둘 다 뭔가 조금은 아쉬웠는지 가까운 다른 곳을 갈까 생각해 보았지만
이미 해는 많이 기울었고
첫 만남은 이 정도면 됐다는 두 번째 법칙인 양 그냥 서울로 돌아가기로 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들이 오며 했던 대화들로 다 해소되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우리의 대화는 올 때보다 적어졌고 대신 침묵이 길어졌다.
그리고 너는 아까보다 더 길게 잠을 자는듯하였다.
차가 밀려 나도 조금 졸렸으나 운전자의 의무에 충실해
그 얇은 눈꺼풀로 몇 번이나 졸음을 삼켰다.
성탄절이라 많은 차가 서울을 빠져나갔다는 뉴스가 사실이긴 한가보다.
서울에 진입하자 제 속도를 내며 너의 동네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네가 사는 곳을 지나며
집의 위치까지 알게 되었고 은행을 들른다는 말에 좀 더 내려가
사거리에 너를 내려주고 연락하자는 말과 함께 다시 어색하게 헤어졌다.
아직은 서로를 잘 모른다.
하지만 취미나 성격이 꽤 비슷하다 생각했고 생각도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니 두 번 만나고 세 번 만나면 조금 더 친해져 있지 않을까?
나는 썩 괜찮은 만남이었고 괜찮은 나들이였다.
그것도 성탄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