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 숙제처럼 살지 말고, 축제처럼 살자!

우리는 출발과 도착점이 정해진 레이스를 달린다.

by 김수현

뜨개질에도 티켓팅이 있다면?


느림의 미학인 뜨개질에 티켓팅이라니…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 진짜 실제로 있다. 인스타그램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팔로우하게 되면, 독특한 무늬를 가진 뜨개 가방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바로 마이리틀피스의 ‘러플스트링백팩’이다.


러플을 만들며 뜨는 독특한 구조에 나 또한 바로 매료되었고, 홈페이지로 접속해 바로 구매 하려 했다. 그런데, 도안은 물론이고 실도 구매할 수가 없었다. 전체 패키지 상품인데 프리오더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프리오더는 출시 전 주문을 먼저 받는 방식을 말하는데, 요즘에는 오픈 일정과 수량을 정해두고 판매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아쉽지만, 다음 주문 일정을 기다리며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3개월도 더 지나, 기억에서 희미해질 때쯤 재입고 공지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드디어 구매할 수 있다니.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일정에 맞춰 아이폰 캘린더에 기록을 해놓았다.


드디어 당일. 오픈되는 시간 그리고 5분 전 알람까지 2개를 설정한 뒤 기다렸고, 새로고침을 반복하며 판매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대망의 정각.

재빠른 새로고침으로 구매 수량과 수령 정보를 입력해 성공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남편에게 연거푸 자랑하며 방방 뛰었다. 남편은 축하한다며 대꾸해줬고, 나는 ‘대학교 수강신청도 이렇게 안 해봤다’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도 이런 불꽃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창 친구들이 가수나 연예인을 좋아할 때. 나는 그 모습이 제법 부러웠다.


콘서트 티켓팅을 위해 연차를 쓰고, 콘서트 티켓값을 벌기위해 출근하고, 무료 방청권이 생기면 뛸듯이 기뻐하는 모습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의 에너지가 멋졌고 내심 부러웠다. 그들에게는 삶의 원동력이 있어 보여서.


누군가는 그것이 자동차였고, 베이킹이었고, 재즈였고, 문구류였고, 음식이었다. 나는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것에 시간과 돈을 쏟는 그들의 삶이 왠지 모르게 빛나보였다.


그래서 나도 한때는 그런 삶의 원동력을 찾고자 오랜 시간을 보냈다. 괜히 일부러 한 사람을 지정해 푹 빠진 척 연기 해보기도 하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가 오히려 비정상이라 생각하며 합리화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나에게는 ‘너무 좋아서 애정을 쏟을 대상’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최근에는 오히려 ‘푹 빠져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겠다 다짐하며 그 자체를 인정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은데, 10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0가지의 생각이 있다는데.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좋아하는 걸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뜨개질 티켓팅을 성공하고 좋아하는 내 모습을 다시 보니, 나도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안도감과 기쁨이 교차했다. 나도 가능하다는 사실에 안심했고, 푹 빠져서 즐길 수 있는 대상이 주는 즐거움에 기뻤다. 실제로 느껴본 불꽃은 내가 살아있음을 보다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언젠가 남편과 불꽃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남편은 불꽃이 주는 삶의 즐거움을 말하고는 처음처럼 계속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은 있을 수 없다며 그 한계도 언급했다.


나도 그 한계에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무엇인가에 뜨겁게 타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과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그 경험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원한다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한 번 경험한 불꽃은 더 가치있는 무엇인가에도 타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니까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을 덧붙였다.

나도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 대꾸했다.


그 대화가 참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 곱씹어보니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씁쓸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미 대화 속에서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을 경계 짓고 그 위에 대화를 쌓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차’ 싶었다.

사람과 삶을 줄 세우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나도 모른 사이 그렇게 살고 있던 것이다.






“삶은 탄생과 죽음이 정해진 소설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소설책을 시작한다.”


누군가의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그래, 더 나은 것도 없고 더 못난 것도 없는데. 어떻게 그 안에서 무엇으로 줄 세울 수 있을까? 모두가 한 권의 소설책이라는 사실을 내가 또 그걸 잊었구나. 끝이 정해진 시간 속에서, 나는 또 다시 무한의 시간이 주어진 듯 살아버렸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 그 귀한 시간을 각자 귀하게 쓰며 살다 가는 것, 그 속에서 서로 길고 짧음을 대는 건 무의미했다.


한편, 생각이 깊어지다보면 결말이 정해진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종종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전부 다 소용없고 무의미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에 잠식되면 마치 야심한 시각 허허벌판에서 홀로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마음 속 불꽃이 하나의 촛불이 되어 나를 이끈다. 불꽃이 하나, 둘 피어나면 나를 둘러싸고 있던 어둠은 점점 뒤로 물러난다. 작은 불빛이 어둠을 전부 밀어내지는 못하더라도, 그 불빛 덕분에 나는 방향을 일지 않는다. 불꽃은 삶에서 그런 역할을 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나는 불꽃을 의지해 걸어갈 수 있다.






숙제처럼 살지 말고, 축제처럼 살자.


우리는 출발과 도착점이 정해진 레이스를 달린다. 비록 출발점과 도착점은 정해져 있지만, 그 레이스 코스와 과정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갈 수 있다. 누구와 달릴지, 어떤 속도로 달릴지, 그 중간의 공백은 모두 나에게 달려 있다.


중요한 점은 그 레이스를 괴로움으로 달릴 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으로 달릴 지 또한 스스로가 선택한다는 것이다.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이 문장 안에 들어있는 무게를 체감한다. 이십대 시절에는 모든 것이 전부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변화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더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게 변한 것과 같다. 다른 게 변하지 않아도 내가 변하면 내 세계는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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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건 절대 없어’


지드래곤의 노랫말처럼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뜨개도 그렇다. 코를 만들며 시작되고 언젠가 끝이 온다. 그러나 그 사이의 여정은 언제나 즐겁다. 코를 줍고, 풀고, 다시 짜는 반복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불꽃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타오르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은근하게 나를 뜨겁게 데우는 것. 불꽃이 밝힌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끝을 아는 존재이면서도 다시 불을 켜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생산적이지 않은 것에 돈과 시간과 마음을 쏟는 것이 무가치하고 저급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시간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그래서 이런 불꽃이 나에게는 소중하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작은 불꽃 하나를 꺼내,

천천히 나의 하루를 짜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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