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 나는 찍먹파입니다

찍어먹어 봐야 알 수 있는 인생의 맛

by 김수현

‘얘, 너는 꼭 그렇게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알아?’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듣고 자랐을 명문장.

나는 이 문장을 들으면 중학교 3학년 시절에 만난 여자 국어 선생님이 함께 떠오른다.


주량이 500 한 잔이라던 3학년 3반 담임 선생님은 한창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중3 학생들을 앞에 두고 장난스럽게 아이들을 나무랐다.

아직까지도 그 말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아마도 선생님의 그 말에 학생을 향한 애정과 잔소리가 적절하게 섞여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포함해 이 말을 들은 모든 학생들은 선생님 앞에서 똥과 된장을 잘 구분해 행동하려 했다. 가능한 똥이 아닌 된장을 선택하는 것으로.

행동은 쌓여 습관이 되고, 습관은 쌓여 나를 구성했는데,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도 똥과 된장을 잘 구분하려 했다. 살면서 가능한 똥은 밟지 않으려고.


덕분에 신중하게 고민을 하는 습관이 생겼고, 덥석 덥석 잡아보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관찰하는 습관도 생겼다. 그리고 좋은 조언과 문장을 찾아 조금씩 책을 읽는 습관도 생겼다.


그런데.

최근에 생긴 새로운 취미가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행하며 몸에 밴 습관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때는 연둣빛 단델리온 가디건을 작업할 시기였다. 포근하게 기모감이 올라오는 가디건을 뜨려고 스우니팅하우스의 2가지 실을 합사해 작업하고 있었다.

메인이 되는 실은 은은한 광택과 부드러운 소재의 질롱울 실을 골랐고 여기에 모헤어로 포근함을 추가했다.


모헤어는 가느다란 실에 머리카락이 생긴 것처럼 얇은 털들이 실을 타고 엉겨 있었다. 특히 정말 얇고 가늘어서 여자인 내가 손으로 잡아당겨도 충분히 실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헤어와 합사 하는 작업은 처음이라 두근댔고, 2개 실을 함께 풀어 뜨니 진짜 뜨개 고수가 된 것만 같았다.


나는 바로 2개 실을 함께 잡아 첫 코를 뜨고 작업에 들어갔다.

모헤어와 합사를 하니, 바늘구멍 사이사이로 실들이 차올라서 앙고라 가디건 느낌이 가득했다. 예상대로 구름처럼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느낌의 가디건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또 실수를 해서 풀어야 하는 구간에 진입하게 되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편물에서 바늘을 빼고 실을 잡아당겨 후두득 풀으려 했다. 그런데 모헤어에서 나온 털들이 그새 서로 엉겨 붙어서 푸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풀리지 않으려 애쓰는 실과 풀으려 이를 앙물은 나 사이에 은밀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후두둑 풀리다가도 심하게 엉겨버린 곳이 나오면 어김없이 작업은 중지됐다.


‘얘들아, 제발 이러지 마…’


손바닥만 한 편물에서 실을 풀다가 제대로 얽히고설킨 구간을 마주하면 덩치 큰 거인은 편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그 덩치 큰 거인은 성격도 급했다. 제자리에서 발 동동거리는 것을 몇 번 하고 나니 답답함에 급기야 힘을 쓰기 시작하는데…


‘투둑’

실이 끊어졌다.


합사 한 실 중에서 모헤어만 뚝 끊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뜨개 작업을 하며 한 번도 가위가 아닌 다른 것으로 실을 잘라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손이 실을 끊은 순간이었다.


‘아… 진짜 끊어지네…?’


그때, 내 머릿속에서 주량이 500 한 잔이라던 국어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울렸다.


‘똥인지 된장인지 다 찍어먹어 봐야 알겠니?’






나는 비로소 그 말을 듣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겪은 사람이 되었다.

말로 들을 때는 똥을 피해 된장을 고르라는 충고였는데, 손끝으로 끊어본 순간 알았다.


세상에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걸.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찍어보는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어른의 말이 꼭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 동등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평등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옛부터 내려오는 선조들의 지혜나 서점에 있는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간적 한계를 가진 우리에게 시간을 아끼며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 모든 경험이 나를 직접적으로 통해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손으로 실을 직접 끊어보고 나니,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은 마치, 제과점에서 구매한 틴케이스에 들어있는 고급 쿠키를 먹으려고 열어보니 절반만 들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틴케이스에 빈 공간, 그러니까 나머지 절반은 나에게 달려있는 것 아닐까? 내가 직접 씹고 뜯고 먹고 즐기며 구성하는 것이 아닐까? 길든 짧든 살아보니, 또 내가 나만의 이야기로 정의하더라도 결코 이상하지 않을 것이 바로 이 세상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을 끝으로 고개를 들어 밖을 보니, 세상 모두 반쪽짜리로 보였다.

그리고 그 나머지 반쪽의 의미는 사실 세상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제야 과거의 나에게 질문을 한다.


‘나는 왜 그때 눈물이 났을까?‘

‘그 말은 왜 아직도 기억에 있을까?‘

‘그걸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한 질문에 돌아온 대답을 적어본다. 단조롭게 일직선으로 보이던 30년의 시간에 곡선이 생기며 풍성함이 생겨간다. 흐르는 강의 물줄기처럼 감아진 곡선마다 눈물과 웃음으로 맺어진 추억섬들이 떠있다. 각각의 섬들은 도전이자 성공이고 실패의 의미를 가져서 지금도 가슴 한켠을 아리게 만든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


어느새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이 더 익숙한 이 속담은 사실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로 끝맺음을 한다. 그리고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을 강조하는데, 오히려 이 문장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색함에 왠지 서글프다.

나도 누군가에게 물음표로 말의 앎을 강요한 건 아닌지 자리에 멈춰서 뒤를 돌아 내 발자국을 조용히 살핀다.


찍어보지 않으면 끝내 나머지 절반을 알 수 없기에

때로는 용기를 내어 찍어서 먹어보고, 부딪히고, 뒤엉켜 구르며 나만의 틴케이스 쿠키 박스를 완성해 본다.


그러는 사이 모헤어 한 올이 엉키듯, 삶도 그렇게 얽히고설켜가겠지.

그렇게 하나의 편물이 완성되어 가겠지.



말로 배운 절반이 매끄러운 울실이라면,

몸으로 배운 절반은 쉽게 풀리지 않도록 만드는 모헤어.


아직 세상에는 직접 찍어먹어 봐야 알 수 있는 일들로 가득하다.


‘찍먹파’인 나는.

아직 찍어 먹어보지 못한 것들에 겸손하게 예의를 차리며 약지를 내민다.



콕! 음… 이런 맛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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