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 브라보! 바텀업 인생

그런데 이제 스웨터나 조끼가 아닌…

by 김수현

한여름 속에서 문득 가을 향기가 나기 시작하면, 뜨개인들은 마음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걸 ‘가을 냄새’라고 부른다. 여름 어느 날 아침, 조용한 출근길에 코끝을 간지럽히는 솜털 같은 가을 바람.


청량함 한 방울이 담긴 그 바람이 한 번 스치고 나면, 햇살에도 노란빛이 돌기 시작하고 반팔 사이로 살결을 스쳐가는 바람 속에는 미묘한 시원함이 감돈다.


뜨개인들은. 특히 니트 뜨개를 선호하는 사람일수록 이맘때가 되면 차곰차곰한 린넨실을 쓰는 여름 뜨개를 얼른 마무리하고 겨울 준비에 돌입하려 부릉부릉 차에 엑셀을 밟듯 엔진을 가열한다.

겨울은 뜨개인을 위한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무늬뜨기에 도전할 수 있고, 여러가지 배색 작품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름의 끝자락부터 초가을 사이에 뜨기 시작한 스웨터, 조끼, 가디건 등은 이듬해 봄까지도 입을 수 있기에 뜨개 작업을 하는 기간도, 뜨개 옷을 입을 수 있는 기간도 길다.


그래서 다들 이 가을 냄새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중 한 명인 나 또한 겨울 맞이로 뜰 첫 작품을 엄선해 준비했다. 이번에 도전한 도안은 마치 교복 카라를 연상시키는 큰 세일러카라가 포인트인 ‘세일러카라풀오버’를 작업하기로 결정했다.






이 도안은 일본인 작품이라 일어로 되어있는데, 번역본이 모두 품절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일본어 원어판으로 구매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새롭게 2가지를 시도했는데, 한 가지 도전은 일어를 번역하며 뜨는 것이었고, 또 한 가지 도전은 바텀업 방식 작업이었다.


스웨터나 니트 그리고 조끼를 뜰 때 뜨개 작업 방식은 크게 탑다운 방식과 바텀업 방식으로 나뉜다. 탑다운 방식은 말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작업이 진행되는데, 목과 어깨쪽부터 작업해 몸통과 소매로 작업이 진행된다. 반대로 바텀업 방식은 쉽게 말해, 밑에서부터 위로 작업해 올라가는 방식으로 몸통과 오른쪽 소매, 왼쪽 소매를 각각 떠서 세 조각을 연결해 완성한다. 탑다운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뜨개’라면, 바텀업은 밑에서부터 ‘쌓아 올리는 뜨개’이다.


이번엔 그 낯선 구조가 유난히 설레었다. 지금까지 운이 좋게도 모두 탑다운 방식의 작업만 했던 터라, 조각을 만들어 쌓아올리는 바텀업 방식을 앞두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뜨개 여정은 또 어떤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첫 코를 잡기 시작했다.


사실상 겉뜨기로만 이루어져있는 도안 덕분에 기술적으로 헷갈리거나 어려웠던 무늬는 없었지만, 전체적인 의류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고 그런 부분은 유튜브와 인터넷 그리고 파파고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이 많았고 그들이 남겨 둔 발자국을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니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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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텀업 작업의 하이라이트. 대망의 몸통, 오른쪽 소매, 왼쪽 소매를 연결해 세일러카라풀오버 니트를 완성했다. 바로 직전까지는 각각의 조각들이었는데, 한 번의 연결로 조각이 니트가 되는 모습을 직접 만들어보니 참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진 조각들도 나중에 이렇게 연결될 수 있을까?’






‘다양한 경험을 하면 좋다.’ 라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나름 이것 저것 해보며 서른살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양한 조각을 만들어 모으는 것만 배웠지 조각을 한 줄로 꿰어서 예쁜 니트로 만드는 법까지는 배우지 못한 나는 어쩌다 보니 다양한 실과 색깔로 뜬 각각의 조각들만 양손 가득 쥔 서른살이 되어 있었다.


이십대 중반까지는 알록달록 다양한 실로 짜여진 조각을 양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빛나게 했다. 그리고 빛나는 나를 한편으로는 나름 즐겼고 더 희귀한 조각을 가지려 욕심내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하나씩 조각을 만들며 ‘언젠가는 귀하게 쓰이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저 수집하는 것이 즐거웠을지도.


하지만 이십대 후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삶의 큰 파도에 떠밀리며 알게 된 사실은 바로 ‘꿰지 못한 조각은 그저 조각’이라는 사실이었다.

마치 세일러카라풀오버 조각이 연결하기 전에는 세일러카라풀오버가 아니라 그저 조각일뿐인 것처럼.

그때 그렇게 정의를 내리는 순간. 마음 속에 비상벨이 울렸다.


띠리리리리리-


비상벨 소리가 귀를 넘어 심장까지 울려대니 마음이 잔뜩 조급해졌다. 어떻게든 실과 바늘로 조각들을 이어 붙여야겠다는 생각에 급급해졌다. 그런데 이런… 가만히 살펴보니 조각들이 서로 너무 달라서 붙일 수가 없었다. 아니, 억지로 붙여도 그건 스웨터나 조끼가 아니라, 형태를 알 수 없는 기괴한 편물이 되었다.

색은 제각각이고 실의 굵기도 달랐다. 너무 낡아버린 조각과 이어붙이기 민망할 만큼 작은 조각. 울리는 비상벨 속에서 나는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주저 앉아 점점 더 작아져만 갔다.


‘최소한 톤이라도 맞출걸…’

‘독특한 나만의 무늬라도 짜놓을걸…’

‘안 쓰는 조각은 그냥 버릴까…그러면 하나로 짤 수 있을까?’


애써 시간을 쌓아 만든 조각들이 하나로 연결되지 못하는 모습에 나는 그렇게 꽤 한동안, 코끝이 찡했고 가슴 아파했다.






조각들이 엮여져 세일러카라풀오버가 되는 모습을 보며, 한동안 잊고 있던 지난 날의 고민과 내 조각들을 오랜만에 꺼내보게 되었다. 시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조각들…

생각난 김에 그 조각들로 또 한 번 칠교놀이를 하며 상상을 펼쳐본다.


잠깐. 내가 스웨터가 아닐 수도 있잖아?

만약 나도 하나의 조각이라면?

그럼 지금 나만의 무늬를 가지는 중 아닐까?


그렇다면 아직 엮이지 않은 나의 다른 조각들과 함께, 언젠가 다른 무늬 속에서 제 자리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묘한 기쁨이 들었다.

아니, 이미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색과 굵기의 실들이 얽히며 나만의 무늬가, 나만의 질감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반드시 하나로 합쳐지는 편물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던 나를 돌려 세워 얼굴을 바라본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니고, 스스로 다짐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믿고 있는 스스로가 문득 코믹하게 느껴진다.


세상 모든 조각은 언젠가 제 자리를 찾는다.

어떤 건 스웨터가 되고, 어떤 건 담요가 된다.

또 그대로 코스터가 되기도 하고,

풀려 새 무늬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나무는 나무이기에 그 자체로 이롭다.'

한 스님의 이야기가 오늘따라 위안이 된다.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돌맹이를 들어올려 냇가로 던져버린다. 한결 마음이 가볍다.


나의 오늘이 내일의 무늬가 되고 어제의 생각이 또 다른 색으로 번진다. 언젠가 충분히 시간이 흐르면 다른 의미로 보게 될 그날을, 돌맹이가 누르고 있던 그곳에 살포시 올려두고 조용히 엮어간다.


언젠가 하나로 엮여도 좋을 조각, 지금 이 자체로도 이미 충분한 조각, 언젠가 풀려도 좋을 조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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