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연말병을 앓았던 이유
나는 유독 지독하게 연말을 탄다.
주변 사람들에게 연말을 많이 탄다고 말하면, 그게 어떤 느낌인지 되묻곤 하는데. 그럼 나는, 한 해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연말병이 도지면, 한 해의 시간이 눈 깜짝할 새 나를 훑고 지나간다. 그때마다 이상하게, 시간의 특별한 감각에 잠기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릴스처럼 짧게 느껴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긴 영화를 보고 나온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아주 작게 후회와 탄식이 뒤따라온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귀한 시간을 낭비 중이라는 사실을 더 빨리 알았더라면. 어차피 떠나갈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 빨리 눈치챘더라면. 뜨개라는 좋은 취미를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지금 이 결정이 틀리면 어떡하지?’
과거에 남겨둔 아쉬움은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낳고, 지금을 더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계속하는 게 맞을까, 멈추는 게 맞을까? 이게 더 나은 선택일까, 저게 더 나은 선택일까? 그 부탁을 들어주는 게 맞을까, 거절하는 게 맞을까?
뜨개질을 할 때에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튈르리폴로 스웨터 작업을 할 때였다. 패턴이 어렵지는 않지만 자주 틀린다는 후기를 보고 유튜브를 통해 미리 다른 분들의 작업기를 살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본격적 무늬 뜨기를 시작하는 오른쪽 앞판에서 많이 실수를 하게 되고, 이후 왼쪽 앞판부터는 패턴에 익숙해져서 틀리지 않고 수월하게 작업한다고 말했다.
나도 어느 정도 비슷하겠거니 생각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정말 열 코를 뜨면 어김없이 한 코를 틀렸다. 쉬지 않고 틀리고 또 풀며 작업을 이어갔고 그렇게 오른쪽 앞판을 완성하고 나서 왼쪽 앞판 작업을 시작했다.
‘나도 이제는 패턴에 익숙해졌으니까 좀 덜 틀리겠지!’
그러나 나는 오른쪽 어깨처럼 틀리고 또 틀리고를 반복했다. 잘 아는 무늬인데도 이렇게 틀리고야 마는지 의아해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작업은 등판과 오른쪽 앞판 그리고 왼쪽 앞판을 이어서 원통 뜨기로 들어갔고, 속도감 있게 떠가기 시작했다.
50g짜리 캔디드 1 볼을 다 쓰고 나서 뿌듯함으로 가득 차 편물을 들어 올려 구경했다. 그런데 삐뚤빼뚤 무늬가 틀린 곳이 제법 많이 보였다.
‘아니 틀린 게 왜 이제야 보이지?’
너무 많이 떠버려서 그냥 넘어갈까 잠깐 고민했다. 그런데 도무지 이렇게 완성하고서는 니트에 손이 잘 가지 않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틀린 부분만 한 줄로 쭉 풀어서 수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애써 공들여 수정한 부분이 오히려 더 도드라졌다. 꼬임은 흐물흐물하고 장력은 서로 달라서 오히려 수정하기 전보다 더 못나보였다. 차라리 수정을 안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다 풀었을 텐데…’
결국 몇 번의 한숨 끝에 지금까지의 원통 작업을 전부 풀어냈고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한 코씩 떠내려갔다.
그렇게 두 번의 실수라면 실수. 후회라면 후회를 겪고 다시금 뜨개 여정을 이어가는 나는 속으로 생각이 많아졌다.
왜 한 치 앞도 못 볼까?
한 번만 더 생각하면 이렇게 돌아가는 일도 없을 텐데.
나는 왜 가장 좋은 타이밍에 가장 좋은 선택을 하지 못했을까?
사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하고 가만가만 되짚어봐도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나는 앞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돌이켜 생각하는 습관을 가졌다. 이런 습관은 차분하게 생각하고 후회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오히려 조심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그리고 손으로는 튈르리 폴로의 원통 뜨기 작업을 하며 생각했다.
‘그때 그렇게 안 했으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똑같이 알 수 있었을까?’
‘그렇게 다 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보이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때 문득 깨달았다. ‘때’라는 게, 그러니까 ‘가장 좋은 때’라는 게. 내가 원하는 ‘가장 좋은 때’랑 삶이 보는 ‘가장 좋은 때’랑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과 가보았기 때문에 보이는 것 말이다.
‘가장 좋은 때’라는 건 늘 지나가고 나서야 보이는 우주의 법칙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도,
어쩌면 가장 좋은 때인지 모른다.
언젠가 친구가 푸념처럼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 간판을 바꾸겠어!’
당시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 말을 곱씹자니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내가 초등학생으로 돌아가도 똑같을 것 같았다. 똑같이 공부하기를 죽도록 싫어하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경찰과 도둑을 하며 놀고,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집에 들어와 바짓가랑이에 들고 온 모래를 다 털고 들어오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도 대충 털고 손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갈 것 같았다.
그때는 그게 가장 좋았으니까.
순간, 행복은 동화 속 주인공처럼 우연한 계기로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갈 것이라는 걸 아는 데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걸 아는 것.
매년마다 연말병을 심각하게 앓던 내게,
그동안의 아쉬움을 풍성함으로 바꿔주는 마법의 주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