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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Aug 15. 2019

이거 어쩌나

저녁을 먹기엔 부담스럽고 거르자니 속이 허전할 때 나는 술을 마셨다. 주종의 8할이 와인이었다. 대형마트 와인코너는 반드시 들러 더블세일하는 와인을 쟁이고 가성비좋은 와인을 사겠단 명목으로 굳이 코스트코 회원가입을 하고 와인수입회사 다니는 지인이 보내온 선물에 침을 줄줄 흘리면서 홀린듯이, 싸구려와인을, 퍼, 마셨다.

와인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소리다. 사흘이 멀다하고 마신 건 맞는데 좋아한 것 같지는 않다.

마실수록 그날의 기분 중 가장 드라마틱했던 감정에 꽂혔고 점점 더 감상적인 상태가 되어 오늘치의 잠과 내일치의 할일을 잊어갔다. 부모님께 받은 감사하고 유의미한 유전형질 가운데 아쉬운 게 있다면 알콜분해효소가 없다는 것이다. 마실수록 얼굴과 심장이 달아오르는 늦은 밤- 소파에 파묻히듯 앉아 와인을 목구멍에 흘려넣으며 나는 생각했다. 당분간 마시지 말아야지.


변명같지만 정말로 나는 술을 못마시는 사람이었다. 잡지사 다닐 적 음악담당이던 나는 취재차 숱한 공연과 가수들의 인터뷰, 내한하는 해외스타들의 쇼케이스들을 훑었다. 가나안의 땅인 양 술이 젖과 꿀처럼 흘렀지만 미제 맥주들과 이태리 와인들은 내게 무가치했다. 버드와이저고 피노누아고 나발이고 마지못해 한 잔을 앞에 놓고 1박2일도 가능했다. 주당 친구들은 나의 무용한 술자리를 슬퍼했다. 내게 주량이라는 것이 생기고, 나아가 재능을 발견한 것은 신문사로 직장을 옮기면서부터다. 한주의 시작인 일요일 출근의 점심시간마다 편집국장은 두 테이블당 빼갈 한병과 맥주 다섯병, 또는 한 테이블당 소주 한 병과 맥주 세병을 돌렸다. 평소엔 아리수로 소금을 만들 정도의 짠돌이가 일주일에 한번 술인심은 기똥찼다. 처음엔 코너에 앉았다가 점점 테이블의 중앙으로 진출, 병권을 쥐었다. 늦은만큼 빠르고 압도적으로 존재감을 키워나갔던 내 인생의 주양연화였다.


빈도에 비해 양이 많지는 않았던 내게 가장 이상적인 술문화는 낮술의 세계, 최적화된 술시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였다. 밥반찬에 찌개 한 냄비, 탕수육과 단무지, 보글보글 끓는 순댓국과 메밀전병 그리고 너무 차갑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소주 한 병. 김대리가 외근 나왔다가 회사로 복귀하고, 동네 아저씨가 강아지와 산책나오는 시간. 정오를 살짝 비껴온 낮 시간에 다정한 사람들과 술배 따로 밥배 따로 비워두고 마주앉아 반주하는 즐거움만큼은 전처럼 술을 마실 수 없게 된 지금도 포기할 수 없는 식도락 중 하나다.  


노화라고 해두자. 근래의 나는 두더지게임처럼 잊을 만하면 갑툭튀하는 장기의 배신을 겪어내고 있다. 시력부터 손가락 관절까지, 식도부터 자궁까지 종과 횡을 오가면서 나좀 봐달라고 고개를 처들어싼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란 고색창연한 표현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례로 이상기운이 찾아올 때마다 병원 돌려막기하느라 내 얼굴은 절인 매실처럼 쪼그라들었다. 허다한 장기의 배신 가운데 뜻밖의 상실은 장기능이다. 작달 수 없는 부인과 수술을 두 차례 치르는 동안 주변에 있던 장기능이 큰 타격을 입고 손상됐다. 그렇다. 이제 나는 칼칼하고 짭쪼롬한 안주와 함께 술 한잔을 목구멍에 털어넣는 상상만으로도 밑이 빠지도록 장이 부어올랐던 공포감이 되살아나 술맛이 자이로드롭처럼 뚝, 정말 뚝 떨어진다. 이게 말이 되냐.ㅠㅠ


나와 십년을 함께 해오는 벤자민고무나무는 양재동에서 사올 때부터 어딘가 기형적이고 늦된 애였다. 가늘고 길쭉한 줄기에 좀처럼 새로운 가지가 나지 않았다. 그땐 몰랐다. 무식하고 성미급한 농장주가 아무렇게나 잘라버려 위로 자랄 수 없게 된 상태였다는 것을. 나무는 가지를 내고 잎을 달아야만 살 수 있다.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다고 판단한 나무는 두 가지 방법으로 가지를 낸다. 뿌리에서 나는 가지를 맹아지, 줄기에서 나는 가지를 도장지라고 하는데 나의 나무는 도장지를 무성하게 뽑아냈다. 줄기는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만 가지를 키워내다보니 이미터에 육박하는 도장지에 내 손바닥만한 이파리를 주렁주렁 매달아 그 아래 누워있으면 서늘할 정도였다.


봄이면 줄기만 남겨두고 가지치기를 해줬다. 한 잎 두 잎 달리다가 더워질무렵 박차를 가해 초록연해지기를 햇수로 8년째다. 벤자민고무나무에는 드물게 금귤같은 열매가 열리는데 3년-4년쯤 됐을 무렵 내 나무에서 처음 열매를 봤다. 이른 아침 뭔가 묵직한 것이 거실로 툭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기척도 없이 열매가 여문 것도 놀라운데 도토리와 밤톨의 중간쯤 되는 오렌지색 열매 두 알이 낙과해있었다. 열매가 흔치 않은 나무이기도 했고 떨어진 열매를 보니 마음이 쓰였다. 과실수가 아닌 잎바라보기용 나무들은 생육환경이 좋지 않아 막바지의 생이다 싶으면 부랴부랴 열매를 단다. 힘들어서 나 이만 하직할랜다 라는 신호다. 그해를 어찌어찌 넘기고 이듬해 분갈이를 해준 뒤 다행히 벌레 한 번 먹지 않고 성큼 자라주었다.


원래 이 아이의 자리는 거실 떡갈고무나무 옆이었다. 체력이 달리니 성미도 성말라져서 덩치 큰 화분이 거실에 둘이나 있으니 답답했다. 당장 내 시야를 터보자고 이 아이만 침실 옆 베란다로 옮긴 지 두 달 째. 오늘 아침 빨래 너느라 아무생각없이 구석으로 드르륵 화분을 밀다가 연두색 열매가 매달린 것을 본 거다. 좁아터진 베란다에서 빨래에 물청소에 치이느라 화분 쉴 날이 없었지만 꼭 그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수술 앞두고 내 심사가 꼬이지 않았다면 멀쩡히 해바라기 하던 명당에서 이 아이를 떠밀어냈을리 없다. 눈맞춤 횟수도 줄고 오다가다 이파리 만져주는 인사도 줄어 입 앙다물듯 옆구리에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나보다. 주인 따라 제 몸도 상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먼저다.

내가 믿었던 건강에 배신당하는 동안 벤자민고무나무는 죽음을 감지하고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니. 술이 즐거웠지만 흥에 겨워 술을 이길 만큼은 아니었다. 건강을 돌보지 않았지만 즐거운 음주생활이 정상적인 신체기능을 반증한다고 착각했다. 건강에 주눅이 드니 반려식물 챙기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실외기실 바로 옆에서 열풍을 맞으며 뿌리가 말라갔을 텐데, 이거 진심 너무 미안해서 어쩐다. 정말이지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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