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극극내향형 인간에게 친구란?
친구 잘 만나야 한다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은 귀에서 피가 나도록 들어도 모자란 조언이다. 좋은 친구가 내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나쁜 친구는 분명 내 인생을 나쁜 방향으로 이끈다. 내가 정의하는 나쁜 친구는 다음과 같다.
나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으며 무논리로 비판하면서 그것이 나를 위한 조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 크고 작은 거짓말로 자기 자신의 실수를 방어하는 사람.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자 하는 사람. 금전적인 폐를 끼치는 사람. 자신의 기분에 따라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 나의 성과 및 성취를 질투하면서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기본적으로 도덕적인 문제가 있거나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너무 당연해서 제외했다.)
요약하자면 나를 존중하지 않고 내 자존감에 흠을 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친구는 상황에 따라 가족보다도 연인보다도 가까운 존재이다. 특히 가치관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20대 초반에는 나쁜 친구의 영향력이 더 극대화될 수 있는 시기이다. 따라서 분명히 친구는 가려서 사귀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선의의 경쟁자
20대 내내 친구는 나에게 선의의 경쟁자였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물론 친구를 경쟁자라고 인식하면서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부지런히 살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친구들을 보면 자극을 받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고, 친구보다 '더' 잘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만큼'은 나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게 된다. 운이 좋게도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사고방식의 친구들이 많았고 그런 친구들과 함께 20대의 기간 동안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발전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그 감각은 상당히 기분 좋다.
평생의 친구
평생의 친구는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인간관계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거주지 변경에 따른 물리적인 거리감, 가치관의 차이, 직장 및 가정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생활환경의 차이. 다양한 요소들이 순수했던 친구 사이에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관계의 형태에 변화가 생겼다. 변화의 순간을 체감하는 순간에는 가끔 울적하기도 했다.
'우리 좋았었는데..'라는 과거 회상에서 오는 헛헛함, '내가 조금 더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했어야 하나?'라는 자책감, '나만 이 관계가 아쉬운 것인가?' 하는 섭섭함. 멀어지는 인연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이러다 외톨이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결혼식 때 내 하객은 5명도 안 되는 것이 아닐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떠나는 인연만큼 새롭게 이어지는 인연이 또 생겨나며, 관계의 모습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할 수 있고 무엇보다 오래된 인연이 반드시 절대적으로 좋은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관계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일이 줄었다.
이 친구와 평생 가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친구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들과 공유하는 어느 하루를 즐겁게 여기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건강한 친구 관계를 만들고 유지시킨다.
외톨이가 되지 못한 자
내향적이고 독립적인 기질 특성상 친구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늘 어려웠다. 피상적으로만 친하게 지낸 친구들도 많았고, 친해지고 싶었으나 친해지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정신적으로 지쳐있던 어느 시기에는 '진정한 친구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냥 나만 잘 살 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적도 있다. 의식적으로 친구에게 정을 주지 않았고 만남과 연락을 피했고 외톨이가 되는 것을 자처했었다.
그러나 나는 외톨이가 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외부적인 상황에 치이고, 정서적인 문제에 무너지고, 사람에게 상처받았던 모든 최악의 순간에 나라는 사람을 지탱해 준 것은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생각의 늪으로 빠지고 싶을 때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의 내가 될 때마다 그들이 툭 던지는 조언, 주접 섞인 응원, 진심 어린 걱정 덕분에 나는 자꾸만 어둠 밖으로 꺼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