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밤 뜬눈으로 기다린 오랜 친구들과의 부산 여행
# 무사히 떠나게 되어 다행이야!
"아침 7시 20분에 서울역 맥도날드 앞에서 만나! 맥모닝 먹고 기차 타자."
약속한 대로 다들 모이긴 했으나, 거의 반숙면 상태로 만난 우리 셋.
퀭~ ㅇㅅㅇ
지난밤 이리저리 포즈를 바꿔가며 편한 자세를 찾아 잠을 청해보아도 정신은 말똥해졌다.
'내일 어떨까?' 부산 여행 생각에 마음은 아직 잘 준비가 안되었나보다.
'에라 모르겠다, 책이나 보자!'
이야기 몇편 읽고,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다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어쩜 우리 이렇게 똑같냐~"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다들 비슷하게 새벽 한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잠들었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졸린 눈이었다. 그래도 여행 생각으로 들뜬 마음은 꺼지지 않고 살아있었다.
부산에 처음 가는 친구, 두번째 가보는 친구~
평소 고향으로 이동할 때 고속버스를 애용하는 친구들은 서울역에 온 것만으로도 설레어하는 모습이어서 여행 시작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졸리지만 자고 싶지 않은 우리들은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조용한 아침 기차 안에서 어찌나 눈치가 보이던지. 세명이라 뒷자리에 앉았던 나는 기차 속도가 빨라질수록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기차 놓치지 않고 무사히 떠나게 되어 다행이야!
# 돼지국밥 전도사가 되다!
"부산에 가면 돼지국밥이지!"
내일로 기차여행으로 부산에 왔을 때 어느 골목길에서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선하다. 유명한 집은 아니고, 걷다가 발견한 집에 무작정 들어갔는데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은 겨울날 배고픈 대학생 여행자의 몸과 마음을 데우기에 충분했다.
돼지국밥 사랑은 여름에도 지치지 않는 것 같다. 부산역 앞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돼지국밥 집은 점심 시간이 다가오기 전부터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부산에 도착한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인 것 같았다.
친구들은 서울에서 순대국밥을 먹어도 부산에서 돼지국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야 적극적이지만 친구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웬걸... 다들 그릇을 싹싹 비웠다.
친구들은 이곳 돼지국밥이 외지인들 입맛에 맞게 깔끔하고, 담백하다고 좋아했다. 그러면서 다른 곳 돼지국밥은 어떤지 물었다. 꼭 유명한데 들어가서 먹지 않아도 국밥은 언제나 맛있다고 했다. 처음인데도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었고, 빈그릇을 보니 괜히 뿌듯해졌다. 뭔가 돼지국밥 전도사가 된 느낌! ㅋ
"잘 묵고 갑니다~!" 최백호 선생님 싸인도 발견!
본전 돼지국밥, 본전 이상으로 맛있게 먹고 갑니다.
# 공갈빵을 찾아라!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 부산역 1번 출구 쪽으로 가면 바로 찾을 수 있다. 역 근처에 위치해있어 잠시 들러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차이나타운 방문 미션 : 신발원 공갈빵을 찾아라!
공갈빵 맛보고 싶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여기도 역시 줄이 길다. 하지만 식사가 아닌 빵을 사는 손님들은 줄서지 않고 바로 들어가서 구입 가능하다.
오, 월병 오랜만이다! :) 고등학교 때 중국어를 전공했던 우리는 추억의 맛을 느껴보자며 월병도 같이 샀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서 찌는 듯 더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중국어와 러시아어로 된 상점과 간판을 유심히 구경하며 걸었다.
차이나타운은 부산역에서 가까워 식사 후 간단히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 청사포로 가는 롤러코스터
장산역 1번 출구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서 벽산1차아파트 정류장에 갔다. 해운대구2 마을버스를 타면 청사포로 갈 수 있다고 한다. '해운대구2 마을버스가 어디로 오는거지?' 찾다가, 택시 타면 3천원 거리라는 것을 발견! 바로 택시에 몸을 실었다.
아니, 롤러코스터에 몸을 맡겼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부산은 인구가 350만명인 제2의 도시라고 말씀하시는 택시 기사님 어깨에 부산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언덕을 넘으니 기사님 어깨 너머로 눈 앞에 탁, 바다가 펼쳐졌다.
"우와!"
일동 감탄사.
내리막길을 내지르듯 달리시니 롤러코스터를 타고 바다로 돌진하는 것 같았다. 푸르른 바다를 보니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
# 전망 좋은 카페를 찾아서!
힘센 바닷바람을 쐬고나니 카페에 앉아 쉬고 싶었다. 전망 좋은 카페 어디있나?
카페루프탑이 좋다는 소문이 워낙 자자해서 올라가봤는데, 역시나 사람들이 그득그득하다. 자리를 찾기가 어려워 다른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여기, 우연히 발견한 카페 치고 진짜 좋은데?"
친구가 발견한 소꿉터는 오히려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더 알맞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가장 원했던 전망 좋은 카페이기도 했고.
"이렇게 오랫동안 멀리 바라보는거 참 오랜만!"
"맞아, 맨날 스마트폰에 빠져있잖아. 눈이 나빠지는 것 같아 걱정이야."
넓게 펼쳐진 바다 앞에서 우리 마음의 문도 활짝 열렸다. 평소 마음 속에만 품어두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는게 여행의 힘 아닐까?
모두 여행할 때 자연 풍경을 오래오래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코드가 잘 맞아 한참을 그렇게 앉아 구경했다.
"아, 참 좋다."
"응, 진짜 좋았어!"
모두가 만족했던 청사포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광안리로 향했다.
# 광안리에서 맛본 '낙곱새'
"낙지+곱창+새우를 한꺼번에? 여기다, 가자!"
광안리에서 갈 수 있는 여러 식당을 조사해봤는데 친구들도 첫번째로 이야기했던 낙곱새를 맛보고 싶어 했다.
"개미집, 개미야~ 너네집 찾아가자!!"
"야~~ 너 이리 와봐!!"
"꺄아아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장난으로 투닥거리며 개미집에 도착했다.
"오~ 진짜 낙지, 곱창, 새우 다 들어갔네!"
"응~ 나 이렇게 먹는 거 처음이야!"
밥에 넣고 비벼서 맛있게 먹었다. 냠냠
우리의 여행 코드는 자연 풍경을 오래 감상하는 게 가장 좋다고 셋다 동의했지만 사실 한 가지가 빠져있었다. 먹고, 자연 풍경을 감상하기. 먹기 전엔 식당을 찾으면서 음식이 어떨까 이야기하고, 먹으면서는 다음에 뭐 먹을까 이야기하고, 먹고 나서 맛있었다 이야기하며 먹방을 찍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네!
# 주말엔 광안리아트마켓 구경을!
광안리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아트마켓이 열려 있었다. 직접 만든 악세사리, 디퓨저 등 수공예품과 광안리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 원하는 문장을 써주는 캘리그라피 엽서 등 아기자기한 구경거리가 많았다.
그중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쓴 시집을 팔고 있는 백구민 시인.
'시집??!!'
시집이라고 하니까 친구가 관심을 갖고 다가갔다.
'시 Through'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얇은 시집이었다. 시인이 직접 경험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밤 늦게 스탠드 켜놓고 읽으면 좋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시집을 사면 맨 뒷장에 글을 적어주시는데 시집을 다 읽고 나서 펼쳐보라고 하셨다.
친구 옆에서 시인의 설명을 들었는데 내용이 흥미로웠다. 자신의 시집을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또 독자가 어떻게 체험하면 좋을지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맨 뒤에 무슨 내용을 쓰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늦은 밤 시를 읽으면 어떤 기분일까 경험해보고 싶었다. 시집을 산 독자와 찍은 사진을 모아 영상을 만들거라고 해서 사진도 함께 찍었다.
요즘엔 이렇게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사람에게 관심이 간다. 그리고 책이나 공연을 색다른 경험을 하고, 느껴보기 위해서 그 값을 지불한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모습도 본받고 싶고 응원해주고 싶다. 맨 마지막 장을 펼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 파도 거품 맥주 한잔 @광안대교
'파도 거품 맥주 한잔 너와 단둘이~'
부산에 오기 전 윤건의 '가을에 만나' 노래를 들으며 파도 치는 바다에서 맥주 한잔 마시면 낭만적일거라 생각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해가 지는 광안 해수욕장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광안리에서 수제맥주를 맛보기를 고대했으나, 수변공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회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회센터를 찾아가보았다.
광어와 우럭 3만원, 멍게 6마리 5천원, 쌈 3천원어치 싸들고 수변공원 방향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부둣가를 발견! 따라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회를 먹고 있었다.
돗자리를 따로 준비해오지 않았지만 여기 참 좋다며 비닐봉지를 깔고 앉았다. 뭐, 갖춰지지 않으면 어떤가? 오히려 더 재밌는데!
친구들도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분위기를 즐기는 눈치였다.
"건배~"
소소하지만 바다 바라보며 맥주 한잔 마시고 싶었는데, 미션 완료! :)
대학입시가 전부인 줄 알고 공부에 매달렸던 고등학교 시절. 그 시절을 지나 각자 다른 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지금.
어느새 이십대 후반이 되어 주요 관심사는 연애와 결혼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 시간이 참 빠르다.
친구들과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를 "참 열심히 했던 친구"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의 재능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서 내가 더 좋아졌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다른 길이 있는 줄도 모르고 공부에만 매달렸던 그 시절에 공부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기가 죽기도 했었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수능이 끝났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스스로를 인정했고, 뒤돌아보지 않고 새로운 길로 발걸음을 옮겨 나아갔다. 뒤돌아보니 함께했던 친구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고,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수많은 추억들이 남아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렇게 함께하며 투닥거리며,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니 어찌나 행복한지!
숙소에 돌아와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라고 물어보니 우리가 간 곳 모두, 순간 순간이 모두 좋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게~ 나도 그랬어! 이렇게 좋은데... 우리 다음 번에 또 같이 여행 가자!"
불을 끄고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잠이 들었다.
친구가 질문을 하고, 내 대답을 5분이나 기다렸다는데... 깊이 생각하느라 말이 없는 줄 알았다는데... 속도 모르고 이미 꿈나라로 가있었다.
음냐음냐... zzz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