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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댁 May 06. 2018

‘더좋은 문호리 책방’에서의 하룻밤

양평군 문호리로 떠난 ‘북스테이’ 이야기

양평 ‘더좋은 문호리 책방’으로!


초등학교 선생님인 친구와 함께 양평에 있는 ‘더좋은 문호리 책방’에 가기로 했다. 예전엔 ‘세상에 재밌는 일들이 많아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더니, 어느 순간부터 책 읽기의 재미에 빠진 내친구 백선생.


친한 언니와 북스테이를 하며 좋은 분위기의 서재와 재밌는 책이 가득해 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고 하길래, “다음에 기회가 되면 북스테이 같이 해보자.”고 얘기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북스테이를 할 수 있는 문호리책방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신청했다. 오픈 기념으로 숙박비 할인(2인, 하루 숙박비 5만원)이라는 행운을 누리며.



양평 가는 지하철 안, 책 읽는 사람들 모습이 눈에 띈다. 옆자리에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맞은편 자리에서는 ‘연인’을 읽고 있다. 각자가 펼쳐둔 책장 속 세계에 빠져있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모습이 익숙한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장면이다. 그래서 그 순간이 더욱 빛나보였다.

왕십리에서 만나 지하철을 타고 출발한 우리는 목적지로 가려면 양수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야 한다. 하지만 양평에 간다고 신나서 지하철 노선도를 보다가 ‘양평역’을 발견하고는 여기서 내리는 것으로 순간 착각했다. 환승하는 버스 정보를 검색하다가 양수역에서 내렸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다, 내려서 돌아가자.



- 지엉(나) : “근데, 맞은편에 앉으신 할머니께서 왜 갑자기 우리한테 사탕을 주셨지? 내가 기침하는 거 보시고 목감기에 걸린걸 아셨나... 아니면 할머니 눈에는 우리가 손녀딸 같아서 주신건가?”
- 백선생 : “아까 네가 자리 양보해드린 할머니잖아. 사탕 왜 주시는지 모르고 받은거야? 크크”
- 지엉(나) : “아, 그렇네! 히히”
- 백선생 : “감기 걸렸다더니, 많이 아프구나...”
- 지엉(나) : “응.”

허허허~ 허당 지엉 꿀밤 한대! 정신 차려라.

그렇게 아신역에서 반대편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양수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리니 공기도 좋고 자연 풍경도 참 멋지다. 자전거 타는 사람도 많고. 계절의 여왕 5월 답게 날씨마저 훌륭했다. 진짜 여행 온 기분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모든 게 한 박자씩 늦게 흘러가는 듯하다. 약 40분 정도를 기다리니 마침내 몸집이 작은 8-7번 버스가 도착했다. 2,3분 마다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 꽤 긴 기다림이었다. 그사이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 줄도 길어졌다. 사람들을 가득 실은 마을버스는 산과 강을 낀 도로를 따라 덜컹덜컹 달리기 시작했다.



맨 뒷줄에 함께 앉았던 학생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문호리 가려면 여기서 버스 타는게 맞는지 물어보니 친절하게 대답해준 친구였다.

- 학생 : “근데, 여기 왜 오셨어요? 볼 것도 없는데.”
- 나 : “하하, 책 읽으러 왔어요. 그러게요, 우리 책 읽으러 뭘 이렇게 고생해서 멀리까지 왔지?”

산과 강 자연 풍경을 보면서 리프레쉬 하려는건데, 여기 사는 친구는 맛집과 놀거리가 많은 서울을 두고 왜 굳이 양평을 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우리가 찾아가는 문호리 책방 주변의 핫한 카페, 맛집, 산책로 정보를 툭툭 무심하게 알려준다. 별다른 기대를 안하고 온 우리는 이런저런걸 할 생각에 점점 신이난다. 그 사이 우리의 목적지인 마지막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말 친절하시네요. 양평 가이드 하셔도 되겠어요. 아니면 홍보대사관?” 친구가 고마운 마음에 칭찬을 건네니, “제가 문호리 책방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같은 방향이에요.”라며 특별히 길안내까지 해준다. 참 재밌고, 고마운 친구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독서를


도착해서 가장 먼저 책방에 들렀다. 양쪽으로 난 창문 밖으로 산과 천이 보인다. 대표님께서 바람을 느껴보라고 창문을 살짝 열어주셨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책읽기 좋은 공간이었다.



입구에는 신간이, 한발 더 들어선 공간에는 중고책들이 가득하다. 중고책 상태는 새책처럼 깨끗하며 소설, 시, 경제, 역사, 여행, 철학, 음악, 영화, 미술, 미디어 등 분야가 다양하다. 남편은 기자, 아내는 IT 개발자 출신의 부부가 가지고 있던 책을 모아 중고책 북카페로 만든 것이었다. 신간 역시 부부가 북큐레이션한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추천해달라고 요청하면 상황에 맞는 책을 친절하게 골라주시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는 서재를 찬찬히 구경하더니 어느새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같은 날 혼자서 문호리 책방을 찾은 또 다른 여성 분도 책을 한권 골라 조용히 집중해 읽으신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 보니 인터넷 매체 연예부 기자로 일하고 계신다고. 아늑한 책방 안에서 스탠드를 켜고 책을 읽고, 필사를 했다. 호젓한 분위기에 마음도 차분해졌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맛집들도 가득해


책방은 원래 저녁 6시까지인데 아쉬워하는 우리는 위해 8시까지 열어주셨다.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찾아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숙소에서 바베큐 파티를 할 수도 있지만, 감기에 폭 걸려서 야외에서 먹기 보다 실내에서 먹는 것을 택했다. 대표님께서 추천해주신 주변 맛집들이 많아서 선택하는데 약간 애를 먹었다. 돈까스, 돼지갈비, 문호리 팥죽, 장어덮밥까지! 다 맛있어 보이는데 어떻게 하나만 고르지?



감기로 목과 코가 많아 부은 나는 콧물과 기침이 계속 나고,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력이 없거나 식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건강을 위해 잘 챙겨먹자는 의미로 장어집으로 들어갔다.



숟가락에 간장밥 한 숟갈, 장어 한조각, 와사비 조금 넣고 아~하고 입을 벌려 맛을 보았다. 스스로 만들어서 떠먹는 셀프 서비스!


진짜 맛있어!!!


친구에게도 먹어보라도 권하고, 친구도 내게 연어덮밥을 한입에 먹기 좋게 만들어줬다.



동네에서 자주 먹는 인생덮밥 보다 맛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던 친구도 음식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장어를 먹으니 더 기운이 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맛있다, 맛있어! 주변에 맛집이 많으니 먹을 거 걱정할 일은 없겠다.



공포의 장애물, ‘스키’ 지나가기


책방과 숙소는 걸어서 2,3분 정도 거리로 분리되어 있다. 친구는 밤새 마음껏 책을 읽고 싶었다며 아쉬워했다. 책방에서 산 책이 있으니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지만 분위기 좋은 서재에서 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재밌는 책을 만나 밤을 지새울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아직 북스테이와 책방을 운영하는 초기 단계라 앞으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심야서점을 생각한 사람들에게 아쉬울 수 있으니 참고하는게 좋을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나니 해가 지고 어두웠다.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근처 카페도 밤 10시면 문을 닫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가로등이 없어서 스마트폰 불을 켜고 더듬더듬 숙소로 찾아갔다. 고만고만한 거리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지만, 어두워서 밤에는 혼자 다니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여자 혼자 간다면 숙소에서 바베큐를 먹는게 더 안전할 것 같다.


밭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숙소로 가는 길에는 크나큰 장애물이 있다. 바로 스키.


스키? 커다란 허스키 이름이다. 스키 앞에는 큰 글자가 적혀있다. 개.조.심. 그것도 두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순하고 애교도 많아 사람들을 보면 반가워 달려들지만, 큰 덩치로 달려오니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기 쉽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개를 무서워했는데, 다행히 친구는 “우쭈쭈쭈”하며 스키를 다룰 줄 안다.



그래도 낮에 본 스키와 밤에 본 스키는 차이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낯선 여자 둘이 스마트폰 불을 켜고 다가오니 경계할 수밖에. 짖어대는 스키를 진정시키며 친구가 먼저 가보기로 했는데, 오마이 갓! 묶여있는 줄이 늘어나고, 또 늘어난다.


하루종일 묶여있으니 답답할까봐 주인 분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셨다고. 식겁했다. 친구가 앞서 걸어가는데 주르륵 목줄을 늘리며 따라가는 스키와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나. 대표님께서 뛰어가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하셨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스키가 따라오면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대표님께 전화해도 받지 않으셨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침착하게 가는 수밖에. 친구가 스키를 잡아주기로 했고, 나는 혹시나 스키가 다가와도 절대, 절대!! 소리 지르거나 도망가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태평한 척 스키를 지나갔다.


휴우, 다행이다. 친구의 손과 바지는 스키의 침으로 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스키 잡아줘서 고맙다고 연신 이야기하며 숙소로 돌아와보니 대표님 부부는 혼자 오신 후배 기자분과 고기를 드시고 계셨다.


그래서 전화를 못 받으셨구나. 어쨌든 무사히 스키를 지나왔으니 다행이다. 혼자서는 절대 못할 일. 친구마저 개를 무서워했다면 어땠을까? 친구의 뒷모습이 든든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잠들기 전에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사들고 온 맥주와 과자를 소박하게 풀어놓고 거실 식탁에 앉았다. 대표님 부부도, 혼자 오신 후배 기자님도 다같이 둘러 앉았다. 주인 부부, 같이 여행 온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 분위기가 나서 좋았다.



문호리에서 전원주택에 살고, 책방을 운영하는 삶에 대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숙소를 운영하면서 계속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참 재밌을 것 같다. 에어비앤비에 숙소로 등록해 두어서 외국인 손님이 오게 될 날을 기다리신다고.



이곳에 앉아서 서울에서의 삶을 떠올려보니, 참으로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대표님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원주택에 살고 책방을 운영하면서 보수할 것이 많아 하루하루 바쁘다고 말씀하셨다.

여행자로 와서 하루 쉬니까 여유있게 느껴지는 거지 직접 와서 지내면 다를 것 같기도 하다.


티비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을 보면 수도가 막히거나 보일러가 터지는 등 이것저것 관리해야 할 것이 많지 않던가? 실제로 대표님 부부도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전원주택에 살면 다 저런거지, 하고 위로 아닌 위로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래도 대표님 부부는 이곳에서의 삶에 만족하며 지내시는 듯하다.


나는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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