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책방 콘서트 6-2. 가을, 그리고 첼로
초등학생 때 생일날이면 학교 앞 떡볶이 집에 갔다. 5,000원어치 주문하면 친구들 10명도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양이 나왔다. 그때는 떡볶이가 제일 맛있었다. 평소에는 200원어치, 배가 고프거나 사치 부리는 날에는 500원어치 사 먹곤 했다. 지금 먹어도 그 정도로 맛있을까? 변치 않은 건 여전히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소울푸드라 여기는 떡볶이 집은 나의 소중한 아지트였다.
며칠 전 이십대 마지막 생일을 맞이했다. (흑 슬프다. 하지만 나이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생일날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마침 금요일이고, 책방 콘서트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첼리스트 두 분이 오신다고 하니, 첼로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평소와 다름 없이 함께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친구와 책방 콘서트에 가기로 했다.
떡볶이 집과 책방 콘서트가 전혀 관련 없는 것 같지만 나에게는 똑같다. 떡볶이집과 책방 모두 나의 아지트라는 것. 아마 20년 후, 쉰 정도가 되면 이렇게 친구들과 콘서트를 다니던 날들이 문득 그리울 때가 있을 것 같다. 마치 지금 내가 20년 전 초등학생 때 떡볶이를 무척 좋아했고,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동안 ‘가을에는 첼로 연주지~’라는 말에 반만 동의했다. 왜냐하면 첼로는 사계절 내내 들어도 좋은 악기이기 때문이다. (감출 수 없는 첼로부심~) 하지만 콘서트 내내 가을에 첼로 연주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첼로는 결실을 맺는 가을의 풍성함처럼 넓은 음역을 갖고 있어서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현악기 특유의 따뜻함이 실린,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음색이 쌀쌀해지는 날씨에 포근함을 전해준다.
콘서트 곡 선정은 널리 알려진 곡 7, 익숙하지 않은 곡 3의 비율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Moon River (티파니에서 아침을 ost)와 파헬벨의 캐논은 아주 유명한 곡이다. J.Barriere의 Sonata for two cellos No.10 in G Major와 D.Popper의 Suite for two cellos Op.16은 이번 콘서트를 통해 새로 알게 된 곡이다.
그 중에서도 언제 들어도 편안한 캐논 연주를 들을 때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졌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이 차태현을 위해 캐논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 한 사람만을 위해 연주해보고 싶은 로망이 있다.
첼로 두 대가 힘을 합쳐 연주하면 정말 멋지다. 레슨을 받으면서 베토벤의 ‘그대를 사랑해’를 연습할 때 선생님께서 반주를 넣어주셨는데, 잘 못하는 실력이지만 소리의 합이 맞을 때면 연주하면서도 감동이 밀려왔다. 그러니 두 첼리스트가 함께 연주하는 곡을 라이브로 듣는 것은 감동을 넘어 행복을 전해주는 귀한 시간이었다.
두 대의 첼로가 함께하면 한 명은 멜로디를, 다른 한 명은 반주를 맡게 된다. 합주할 때를 돌이켜보면 반주가 박자를 안정적으로 맞춰주고, 정확한 음을 내야 멜로디도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두 첼리스트가 어려운 곡도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면서 합주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책방콘서트인 만큼 연주자가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첼리스트 송민제 님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추천했다. 판타지 소설 속 앨리스는 초반부터 손톱만큼 작아졌다, 거인처럼 커지는 등 별 이상한 일을 다 겪는다. 이상한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지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첼리스트 송민제 님은 자신을 이상한 사람, 일명 돌+I로 표현하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음악을 이상한 나라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의미였다.
화려한 기교가 넘실대던 Popper의 Suites for two cellos Op.16 연주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복잡하고, 어려워서 무대에 올려지거나 레코딩되는 일이 드물어 대중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곡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무대에 서는 연주자는 대중과 소통하는 것 못지 않게, 곡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려면 연주자는 관객 보다 한발 더 앞서 가 있어야 한다. 그 모습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굳이 저런 곡을? 왜 저렇게 밤낮없이 연습할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주자는 음악을 통해 자신이 그리던 세계를 표현하려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완성된 모습으로 펼쳐내서 대중에게 그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것 같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연주가 끝나자 첼리스트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최인아 대표님께서 “외모보다 목소리 좋은 사람이 멋지던데, 이렇게 소리를 만들어내는 연주자들은 더 멋있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셨고, 끄덕끄덕 격하게 공감했다.
첼리스트 송민제님과 이호찬님, 그리고 피아니스트 송영민님처럼 프로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과 함께 자극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첼로의 매력을 좀더 깊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주말 동안 유투브에서 콘서트에서 들은 곡은 물론 또 다른 첼로 영상도 많이 찾아보았다. 첼로의 매력에 풍덩 빠져 앞으로 첼로 연습을 좀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연주가 끝나고 첼리스트 두 분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이 마음을 오래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