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 어딘가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즐겁고, 지속적으로 하는 나만의 길을 찾아서

by 이수댁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한 사람만을 위한 서점 by. 정지혜

199페이지. 한 장이 모자라 2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얇고 가벼운 책인데, 다 읽고 나니 좀 두꺼워졌다. 위, 아래 세모 모양으로 접어둔 페이지가 이렇게나 많다니!

정지혜 작가님은 ‘사적인서점’이라는 책방 주인이다. 사적인서점은 운영 시간을 정해 하루 두세 명의 손님만 받는 특이한 책방이다. 한 시간 정도 책방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 사람을 위한 한 권의 책을 선정하고, 정성스럽게 포장해 우편으로 보내준다. 주인장의 편지와 함께. 어떤 책이 올까? 왜 이 책을 추천했을까? 두근두근 기다리게 될 것이다.

책 머리말에는 책방 주인이 서점 준비 과정에 대해 쓴 이야기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자영업 또는 프리랜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확장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아이템이 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갔다. 동네책방을 좋아하는 나로서 운영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걱정이다.’, ‘두려웠다.’라는 단어를 많이 발견했다. ‘책방 열고 싶으면 이렇게 하라.’는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무엇을 더하고, 뺐는지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불안하고, 두렵지만 온전히 자신을 믿으며 하나하나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이었다. 책을 덮을 때쯤 “언니, 책 잘 읽었어요!”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작가님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 가지 좋았던 점은 서점 준비를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할 때 생각을 정리하고, 위로를 얻었던 책 속 글귀들을 중간중간 볼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책 처방을 하시는 분 다웠다. 나 또한 책으로 간접경험을 하고, 위로를 받기에 그 과정이 무척 자연스럽고, 와 닿았다. 이렇듯 인생에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책의 문턱을 낮춰주고, 책과 함께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열어주는 일,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녀는 책이 좋아 계속해서 책 곁을 맴돌고 있다. 편집자, 서점원을 거쳐 책방 주인으로서의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책과 만나는 즐거운 방법을 하나 더 배워보면 어떨까?


p11. 책이 없었다면 내 삶이 얼마나 가난했을까.


p70. 누군가에게 추천할 책을 고민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행위다. 여행지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며 엽서를 쓰는 것과 같다. (하바 요시타가,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p74. 가장 먼저 서점의 콘셉트를 정해야 했다. 어떤 책을 팔면 좋을까? 어쩌다가게에서 운영하는 서점인 만큼 운영 주체와 공간의 특성이 드러났으면 했다. '뜻밖에 우연히'라는 가게 이름의 의미를 살려 '발견성'을 서점의 주요 콘센트로 잡았다. 대형 서점에서는 보기 힘든 책, 서점을 방문한 손님이 사려고 계획한 책이 아닌 의외의 책을 발견할 수 있는 서점을 만들자.


p77. 매달 한 명의 작가를 서점 주인으로 선정하여 작가가 직접 꾸미는 책방 속의 책방이라는 콘셉트다. 작가에게 '서점을 연다면 그곳에서 소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라고 묻고 그가 추천하는 책에 이유를 적은 짧은 글을 곁들여 소개한다. 물론 작가의 대표작도 함께 진열한다. 이 기간 동안 어쩌다책방에서 책을 구매하면 책방 주인의 개성이 묻어나는 한정 북커버로 책을 포장해 준다. 한 달에 하루쯤은 작가가 직접 책방지기로 나서는 행사를 열어도 좋을 것 같다.


p87. "어떻게 이런 방식의 서점을 열 생각을 했어요?" 책방을 열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서점이라는 틀에 내가 좋아하고 자신 있어하는 일을 더하고, 하기 싫고 부담스러운 일은 빼서 만들었다. 나 역시 사적인서점을 열기 전까지 직업이란 사회가 만든 일자리라고 생각했다. 취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틀에 나를 넣는 일이라고 말이다. 사적인서점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직업은 내가 만들기 나름이라는 것을 배웠다.


p96. 이런 사정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결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지 모른다. (김운하, 『선택, 선택의 재발견』)


p105. "지혜야, 독서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야."


p139. 돌이켜 보면 나는 좋아하는 일에 환상을 품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도 지겨워질 수 있고 좋아하는 일도 하기 싫을 때가 있음을 받아들인 지금, 나는 안다. 절대적으로 즐겁고 보람 있으면서 돈까지 잘 버는 일, 그런 일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회사원으로 일하는 것에도 자신만의 가게를 꾸려 가는 것에도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반짝이는 빛 뒤에 드리운 그림자를 이제 나는 안다.


p144. "지혜 씨, 까탈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엄격할 필요는 있어. 이건 지혜 씨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잖아." 나는 까탈과 엄격을 혼동하고 있었다. (...) 요청을 거절하면 더 이상 제안이 들어오지 않거나 좋지 않은 소문이 나는 등 큰일이 날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적인서점의 운영 규칙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어서 큰 힘이 됐다.


p145. 어떤 제안에 대해 안 해야 할 이유를 찾다 보면 결국 손해만 아니면 하게 된다. 당장 내 돈을 까먹는 게 아니면, 어차피 남는 시간 좀 쓴다고 내 스케줄이 꼬일 게 아니라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할 이유를 찾는 건 다르다. 나의 노력에 대한 확실한 보상이 있는가? 그 보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 나에게 도움이 되는 보상인가? 이런 질문을 통해서만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가 드러난다. 조금 더 간단히 설명하자면, 안 해도 될 이유를 찾으면 안 해도 될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을 하게 되고, 해야 할 일을 찾으면 해야 할 일만 하게 된다. (위근우, 『젊은 만화가에게 묻다』)


p154. 가격 책정 기준은 '사람들이 이 가격이면 이용해 줄까?'가 아닌 '이 프로그램에 이 가격이 정당할까?'여야 한다는 사실을.


p161. 그중 가장 주요한 승부처는 바로 (고객들의) 마음이다. (......) "누구든 저를 공익 단체로 생각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누구든 우리 매장에서 사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사람들이 우리 매장에서 사고 싶어 하기를 바랍니다." (데이비드 색스, 『아날로그의 반격』)


p163. 최소한의 돈을 써서 최대 이익을 얻는 '합리적 소비'가 아닌 자신의 가치관을 넓혀 주거나 자신이 공감하는 것에 돈을 쓰는 '투표적 소비'. 좋았으니까, 응원하니까, 돈으로 한 표를 행사하기 바라는 것이다.


p165. "이런 공간에서 이익을 내야 합니다." 도블린은 자주 서점에 와서 지갑으로 투표를 하여(즉 돈을 써서-옮긴이) 원하는 서점, 이웃, 도시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력 있게 말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찾아오는 한, (언제까지나)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데이비드 색스,『아날로그의 반격』)


p171.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언제나 그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p178.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다 보니 일이 스스로 커지는 경험을 했다.


p178.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 삶 속에서 나는 언제나 쉽게 지치고 쉽게 실망했다.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서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계획한 대로 성실히 살아간다고 해서 원하는 목표가 모두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인생에는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지금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면 된다고, 그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바라던 모습이 된다는 걸 일본 서점 여행이 알려 주었다. 그 깨달음이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으로 바꾸었다. 1년 뒤, 3년 뒤, 5년 뒤, 또 어떤 놀라운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질까.


p186. 꿈을 이루느니 어쩌니 하지만, 하루하루는 정말 소박하게 지나간다. (......) 그러나 나는 그 소박함 너머에 있는 것을 줄곧 바라보았다. (요시모토 바나나,『바다의 뚜껑』)


p188. 축구부 아이들을 위한 도서 목록을 정리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고른 책 한 권의 무게를 생각했다. 이 한 권의 책이 아이들의 인생에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 권 한 권 허투루 고를 수가 없었다. 내가 고른 한 구너의 책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 내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 너머에는 그런 단단한 믿음이 있다. 번잡스럽고 지난한 과정 너머에 있는 것. 그것을 믿기에 나는 오늘도 서점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p193. 꿈꾸는 일이나 시작하는 일, 그리고 시도하는 일은 중요하다.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견디고 기다리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일을 할 때 견딜 수 있다. 아무 일이나 견디기만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견딜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 다시 말해 견딜 수 있는 꿈을 꾸는 것, 그 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켜 나가는 것, 그곳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수희,『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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