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은 퇴근 후 뭐하냐고 물으신다면...
올해 생일에는 두 명의 친구에게 책 선물을 받았다.
대학생 시절 이후로 정말이지 오랜만에 생일 선물로 책을 받아서 기뻤다.
그 중 한 권은 '부쿠서점 비밀책'이었다.
#사랑하지 않고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 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포장지에는 책 속의 한 구절이 적혀있다.
어떤 책인지 모른 채, 문장을 보고 책을 고르는 것이다.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책을 고르는 것도 참 좋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책을 선물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 "무슨 책이야?"
- "나도 몰라."
- "무슨 책인지 궁금하다!"
- "그러게~ 나도 궁금하네."
- "뜯어볼게~"
(북북 : 포장 뜯는 소리...)
어떤 책이 들어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취향에 맞지 않을수도 있지만, 이런 기회에 평소 읽지 않는 책을 읽어보는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 어떤 책을 선물해야 할지 모를 때 부쿠서점 비밀책을 준비해도 좋을 것 같다.
비밀책을 계기로 부쿠서점이 더욱 궁금해졌다. 주변에서 가보고 좋았다는 후기도 점점 늘어났다.
성북동에 위치해 있어서 평일 저녁에 가기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마침 17시에 업무를 마치는 가족 사랑의 날 성북동으로 외근이 있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쿠서점을 찾았다.
한성대입구역에서 1111번 버스를 타고 덜컹덜컹 서점을 찾아가는 길이 참 설렜다.
회사가 위치한 테헤란로는 꼭두새벽부터 밤사이 떨어진 낙엽을 싹싹 청소한다. 이른 시간에 청소해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하지만,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이 컸다.
낙엽을 밟으며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언제나 깨끗하게 유지되는 비즈니스 타운에서 근무하다 보니, 따뜻한 정서가 풍기는 길이 참 그리웠다.
자박자박 낙엽을 밟을 수 있고, 시야가 탁 트인 한적한 가로수길...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낙엽 밟을 새는 없었지만 성북동 특유의 아늑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주변에 멋진 카페와 식당도 많이 보이고... 연인들이 데이트하기에도 좋은 분위기였다.
평일 저녁이라 서점은 한적했다.
혼자서 책을 읽는 남학생의 뒷모습,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진 중년의 여인들...
계산대와 업무용 탁자에서 일을 보고 있는 서점 직원들, 그리고 우리 둘.
따스함이 느껴지는 주홍빛 샹젤리제와 곳곳에 걸려있는 작은 조명들, 천천히 흐르는 음악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책을 읽을 때 따뜻한 차와 커피, 소소한 디저트가 더해지면 환상의 조합이다. 부쿠서점에는 크렌베리/생크림 스콘, 초코/자색고구마 하와이안 머핀, 티라넛 파운드/오렌지 케이크, 플레인/얼그레이/초코 까눌레 등 다양한 스윗츠가 있다. 책에 어울리는 마카롱을 같이 진열해놓은 것도 인상 깊었다.
냉장고에는 물과 음료, 맥주도 가득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바로 옆 또 다른 냉장고에는 책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Fresh Book? 새로 들어온 책인가?'
맨 윗칸에서 책을 한 권 꺼내보니 차가운 우유처럼 시원함이 느껴졌다. 신간도서를 독자에게 전하는 신선한 방식이 돋보였다.
큐레이터가 책을 소개한 메모에 집게로 낙엽 꽂아놓기, 책에 어울리는 마카롱, 그림, 연필 등 음식이나 소품을 함께 진열한 모습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한참동안 책방을 둘러보았다. 책과 어울리는 맥주, 차, 커피, 빵 추천으로 다양하게 확장해서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쿠’는 인도네시아어로 '책'을 뜻하며, 독자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추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취지에 맞게 다양한 장치로 책을 둘러싼 장벽을 낮추고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대형서점에서 찾을 수 없는 책을 발견하는 것이 동네책방의 큰 매력이다. 어떤 책에 손이 가는지 보면서 지금 나의 관심사, 고민, 취미, 취향이 무엇인지 되짚어볼 수 있다. 또한 요즘 트렌드는 무엇인지 살펴보기도 한다.
돋보기로 책 문장을 확대해서 보고, OHP필름을 사용해서 책 추천 이유를 책 속에 메모한 것처럼 보는 방법도 모두 색다른 시도였다.
- “요즘 젊은이들은 퇴근 후 무엇을 하나?”
- “뭐 재밌는 일 없어요?”
회사 선배님들은 종종 나에게 요즘 재미있는 일이 뭐냐며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럴 때 나는 동네책방 여행을 자신있게 추천한다.
책방에 가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맑아진다. 잠시 다른 세계로 여행을 다녀오는 기분이랄까? 멀리 떠나지 않아도 여행하고 온 것 같은 가성비 좋은 나만의 취미는 동네책방 산책이다.
이번에 처음 방문한 부쿠서점은 돌을 맞이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오래오래 함께 생일을 축하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