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케렌시아는 어디인가요?
당신의 케렌시아는 어디인가요?
케렌시아는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는 곳을 뜻하는 스페인어입니다. 우리말로 피난처, 안식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요.
대부분 연말이 다가올수록 업무가 바빠지기 마련이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12월 첫 주말, 토요일에는 행사 진행을 하고 일요일에는 또 다른 행사 준비를 했습니다. '몸이 축난다.'는 표현이 몸소 느껴질 정도로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이 느껴졌어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어느 순간 눈을 떴을 때 할머니 두 분이 제 앞에 서 계셨어요.
"죄송합니다. 몸이 좀 안 좋아서 앉아있다가..."라고 이야기하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몸이 안 좋으면 앉아있어도 괜차녀~"하시며 제 몸을 밀어 다시 앉히셨어요.
감사하지만 앉아 있어도 마음이 불편했는데 마침 내려야 하는 경복궁역에 도착했습니다.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직진하다가 '통의동 단팥' 간판이 보이면 좌회전. 다시 직진해서 걷다, '아트사이트 갤러리'를 지나면 동네책방 부쿠엠이 보입니다. 길치인 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어요.
서점에 들어서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차분히 흐르는 음악, 다양한 생각으로 말을 걸어오는 책 냄새, 조용하지만 밝은 공간 속에 편안함이 느껴졌어요. 몸도 마음도 지칠 때 아무 곳에 가지 않고 집에서 쉬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가끔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여건이 안될 때도 있지요.
그럴 때 저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서울 내에서도 다른 동네에 오면 느껴지는 에너지가 제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느긋하게 산책을 하면서 꼭 들르는 곳은 동네책방이에요. 요즘은 동네마다 개성 있는 책방이 생기는 추세라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번에 제가 들른 곳은 잡지를 주로 다루는 부쿠엠입니다.
책방에 다양한 생각을 읽으러 갑니다. 나와 다른 시선을 보며 영감을 얻곤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키워드는 무엇인지 살펴보기도 해요. '미움받을 용기'로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기시미 이치로의 '마흔에게', 정여울 작가의 '마흔에 관하여' 등 '마흔'이라는 나이를 겨냥한 책들이 눈에 띕니다.
서른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렸을 때는 삼십 대가 되면 꽤나 안정적인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취업과 결혼이 늦어지다 보니 서른이 되어도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마흔이 더욱 주목받는 것 같아요. 자기 삶을 돌아보고, 숨 고르기를 하는 시기가 마흔으로 늦춰진 건 아닌가 싶습니다.
책방마다 독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 부쿠엠은 매거진을 주로 내세워 독자들을 만나고 있어요. 잡지는 정기적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발행하기 때문에 관심 분야에 대해 입문하거나, 깊이를 더해갈 때 보면 좋은 것 같아요.
평소 생각해보지 못한, 다양한 분야의 잡지를 구경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과연 어떤 매거진들이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느 분야에 관심이 가나요?
- 핑거 프린트 : 매호 일상의 사물을 주제로 건강한 삶, 추억, 경험을 살펴보는 매거진
- 사물함 : 매호 하나의 사물을 다각도로 탐구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매거진
- 뉴필로소퍼 : 인문학을 기반으로 일상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매거진
- 볼드 저널 :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며 창의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아버지들을 위한 매거진
- 보스토크 : 사진, 현대미술, 디자인,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진 매거진
- 어반라이크 : 기존의 패션 매거진과 달리 패션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의 소비생활을 다루는 매거진
- 프리즘 오브 : 한 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는 계간 영화 매거진
- 아침 : 아침에 느끼는 영감을 담아내는 매거진
- 영향력 : 전업작가가 아닌 사람이 일과 후 부엌 식탁에서 써 내려간 글
- 나우 매거진 : 도시와 사람을 탐구하는 로컬 다큐멘터리 매거진
- 부엌 : 식과 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인터뷰 중심 매거진
- 어반 리브 : 각 호마다 하나의 도시를 선정해 삶을 경험해보는 매거진
- 드리프트 : 매호 한 도시를 선정해 그곳의 커피와 공간, 인물을 이야기하는 매거진
저는 두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와아.. 잡지가 이렇게나 다양하다니... 잡지 주제가 이렇게나 신선하다니!
개인적으로는 해외에서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기에 '어반 리브'라는 잡지에 관심이 갖습니다. 뿐만 아니라, 워라밸을 즐기는 아버지들을 위한 매거진 '볼드 저널'은 회사 선배들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을 것 같아요.
최근에는 책의 깊이와 뉴스의 시의성을 두루 갖춘 '북저널리즘' 콘텐츠도 종이와 디지털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맥락과 배경까지 깊이 있게 알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차이나 핀테크를 다루는 '중국에선 현금이 필요 없다.', 다시 을지로를 주목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우리는 지금 을지로에 간다', 인간이 없는 직장을 주제로 한 '갑을 노동의 사회'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테크에 관한 다방면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습니다.
정말 별 거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거예요. 바로 먹을 거!
책을 보면서 스윗츠와 함께 커피 한잔을 즐기는 것도 소소한 행복입니다.
부쿠엠에는 커피머신이 없습니다.
카운터에서 결제 후 1층 ASLIKE라는 카페로 내려가 음료로 교환하시면 됩니다.
부쿠엠으로 올라갈 때 분위기 좋은 카페에 사람이 붐비지 않아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부쿠엠과도 연결되어 있어 좋았어요.
정말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도 많이 보였습니다. 저는 경복궁역에서 부쿠엠으로 걸어오는 길에 위치한 한 빵집에 저도 모르게 들어가 쿠키를 사 왔기에... 다음 기회에 맛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커피와 쿠키를 먹으며 당 충전을 하니 행복한 주말이 따로 없었습니다.
째깍, 째깍.
재빠른 시간의 속도보다 앞장서 살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생각의 바다에 머물게 하는 힘이 책방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책방이 마음의 쉼터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