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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댁 Feb 03. 2016

입맞춤보다 더 달콤한 눈 맞춤

당신은 오늘 하루 누구와 진한 눈 맞춤을 나누셨나요? 

콜록콜록.

살을 에는듯한 한파가 지나가고 동장군의 수명이 짧다고 느꼈을 때, 잠시 방심한 탓일까요?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하루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목이 붓고, 콧물도 납니다. 

감기에 꼭 잡혀 잠긴 목소리를 확인하고 나니 혼자 사는 독거청년은 더욱 서럽습니다.


아플 때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먹습니다.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중의 명약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입니다.

"감기 걸렸어요? 얼른 나아요~"라는 작은 한 마디, 따뜻한 죽 한 그릇 정성스럽게 끓여 내어주는 듬직한 두 손이 평소 까다롭게 굴던 사람도 순둥이처럼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줍니다.




2월의  첫날, 빅이슈 신간이 나오는 날입니다.

잦은 기침으로 힘겨운 월요일을 보내고 일찍 퇴근하여 집에 가는 길, 저 멀리 빨간 모자와 빨간 조끼를 입은 빅판 아저씨가 보입니다. 선릉역 1번 출구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고 서 계십니다. 늘 지나치는 익숙한 길, 바쁘게 통화하며 걷고 있었고 늘 같은 자리에 서 계시는 아저씨께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저씨, 신간 나왔어요~? 한 권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짧은 인사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다음 날 퇴근길도 통화를 하며 걷다가 선릉역 1번 출구를 지나가는 길에 빅판 아저씨께 가벼운 눈인사를 건넸습니다.

"커피 한 잔 하고 가세요~"

그 말에 전화를 끊고, 아저씨와 다시 한 번 눈을 마주쳤습니다. 아저씨는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제는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것 같던데, 오늘은 괜찮으세요? 제가 따뜻한 차라도 한 잔 살게요."


어제 잠깐 인사를 나누면서 마스크 너머로 누렇게 뜬 얼굴과 낮아진 목소리 톤으로 눈치를 채신 걸까요? 

따뜻한 차는 제가 대접해 드리겠노라고 몇 번이고 사양했지만, 건강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하시며 자몽차를 건네주십니다. 고맙고도 죄송한 마음과 차 한잔을 받아 들고 집에 가던 길에 아저씨의 빨간 모자와 어울릴만한 귀마개를 사서 아저씨께 되돌아갔습니다. 그랬더니 귀마개는 이미 있어서 필요 없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이런 거 바라고 드리는 거 아니에요~ 귀마개는 갖고 있는 게 있으니까 환불하셔요. 

매일 인사 나누는 게 저한테는 엄청나게 큰 힘이 돼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따뜻하고, 진실되다는 것은 분명하게 전해졌습니다.

사실 매일 같은 곳에 서 계시는 빅판 아저씨와 눈인사 또는 가벼운 목례를 나누는 것은 제 일상 중 소소한 기쁨이었습니다. 추위를 온몸으로 견디시면서도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죠.

아침에 마주치면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퇴근길에는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시는 모습이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께도 마찬가지도 매일 나누는 안부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하시네요.  

다시 상점으로 돌아가 귀마개는 환불하고, 따뜻한 장갑을 사서 포장했습니다. 참 별 거 아닌 짧은  눈인사가 따뜻한 차를 선물하고, 또 이렇게 손장갑을 포장하게 하는 나눔의 선순환을 떠올려보니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마음에서부터 힘이 난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감기약보다 사람의 따뜻한 손길에서 감기 바이러스와 맞서 싸울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때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매일 눈 맞춤을 하며 안부를 묻는 빅판 아저씨와 한 발 더 가까이에서 따뜻한 차를 호호 불어가며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랬습니다. 


아직 감기 기운이 남아있지만 이제는 감기를 이겨낼 힘이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여전히 동장군은 심술을 부리며 씩씩 차가운 콧바람을 내쉬지만, 머지않아 봄이 찾아오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뜨거운 입맞춤보다 더 진한 눈 맞춤을 나누며 살아갈 힘을 얻고, 우리의 앞날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 누구와 진한 눈 맞춤을 나누셨나요?

입맞춤보다 더욱 달콤한 눈 맞춤으로 매일매일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마음속 깊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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