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함께한 느긋한 1박 2일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 어떤 공간에서는 시간이 더욱 느리게 흐르고, 깊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무언가를 보기 위한 관광이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이야기하고, 쉬면서 정겨운 시간을 함께했다.
다른 공기와 풍경이 우리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었다. 알록달록한 꽃이 예쁘게 핀 마당이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와 두 다리 쭉 뻗고 앉아 쉴 수 있는 정자는 우리의 쉼터가 되어주었다.
6월의 전주는 푸르렀다. 높은 빌딩 대신 초록빛 상과 나무가 마을을 뱅 둘러싸고 있었다. 택시와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은 푸근하고 친절했고, 마침 전주대사습놀이 기간이라 거리마다 국악이 흐르고 있었다. (신명 나는구나~ 얼쑤!)
뿐더러, 여행을 할 때 우리의 의지를 넘어 더 좋은 시간으로 이끌어주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바로 날씨다. 이번 여행은 날씨 요정이 고맙게도 우리 편이었다. 첫째 날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쌀쌀하다 느껴질 정도로 흐리고 선선한 날씨, 둘째 날은 비 온 뒤 맑은 하늘이었다. 뭘 해도 좋은 날씨라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설레고, 편안하며,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번 여행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싶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결혼 전 친구들과 떠난 처녀 여행이기 때문이다. 처녀 여행..?! 엄마께서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친구들과 여행할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거라며 붙여주신 이름이다. 처녀귀신도 아니고, 처녀 여행이라니 느낌이 쌔~하다. 친구들과 비빔밥 사먹을 용돈을 보내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대신 이번 여행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받아들였다.
엄마 말씀대로 친구들과 우물을 파듯 깊고 깊은 마음의 대화를 나눴다. 인생의 비슷한 시기를 보내는 친구들은 사실 고민해결에 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진짜 해결책과 조언을 구하려거든 훨씬 경험이 많은 선배나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대학 입시, 취업, 결혼 등 인생의 큰 전환점 앞에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의 주요 대화 주제는 결혼이었다. 막연하게 결혼을 생각할 때 친구들이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기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 반대다.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고 양가 부모님과 여행을 가는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식에 대한 큰 기대가 없어 거꾸로 야외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남자 친구의 의견을 조용히 맞춰주기도 한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삼국사기의 문구처럼 친구들이 생각하는 결혼의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빛난다. 보여주기 식이나 화려한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는 모습이 더욱 좋아 보인다.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결혼식 보다 두 사람이 잔잔하게 행복을 느끼는 결혼생활을 차분하게 준비하기를 응원한다. 지금처럼 많이 고민하면서 각자의 소신에 맞게 만들어갈 결혼식과 그 후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어떻게 변화되어 갈까? 기대된다.
한옥의 딱딱하지만 따끈한 바닥 위에서 잠옷을 입고 비글미 넘치며 오글거리는 커플 사진과 서로를 부르는 애칭을 공유하며 꺅꺅 소리 지르던 시간도 재미있었다. 우리 곁에 평생을 함께 하고픈 사람이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다니, 우리가 결혼을 한다니! 아직 실감이 나지 않지만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느슨하고 여유로운 시간 속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과 해결책을 나누며 함께 한 1박 2일은 짧았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다. 결혼 후에는 각자 고려할 점이 더 많이 생겨 다 같이 시간을 맞추는 것이 좀 더 어렵겠지만, 가끔씩 오래 보며 진하게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 다음번엔 2박 3일로 대만과 중국을 가보자는 다짐 잊지 말고 꼭 지킬 수 있기를!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 해 줘서, 언제라도 곱씹을 수 있는 예쁜 추억을 함께해 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주말이었다.
2019년 6월 11일 화요일,
안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