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역 1번 출구에서 빅이슈를 판매하시는 빅판 아저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한정구 빅판 아저씨이다. 비록 현재는 빅이슈 잡지 판매를 그만두셨지만, 기억하기로 선릉역에서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키신 분이시다. 잠시 서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에도, 빌딩 숲 사이로 살을 에는 칼바람이 쌩쌩 부는 날에도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서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셨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지하철 입구 안에서 비를 피해 장사를 하셨다. 하루 종일 바깥에 서서 근무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이 잘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는 모습으로 인사해주셔서 지치고 피곤한 출퇴근길, 감사한 마음으로 선릉역을 지나다닐 수 있었다.
아저씨와의 인연은 오래되었다. 선릉역을 떠나 강남역에서 근무하실 때에도 가끔이나마 얼굴을 뵐 수 있었고, 지금의 남편과 처음으로 셋이서 함께 식사를 했다. 아저씨께서는 종종 홍보용으로 나온 잡지를 우편으로 보내며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러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리시면서 잠시 연락이 끊겼다가, 잠실역을 지나는 길에 우연히 아저씨를 다시 뵙게 되었다. 그해 연말에는 회사의 나눔 활동에 동참해 빅이슈 잡지 10권을 구입하고, 또 한번 셋이서 식사를 함께했다. 그렇게 쌓아온 인연으로 지난 10월 우리의 결혼식에 오셔서 축하해주셨다. 청명한 가을 날씨에 나들이객이 많아 버스로 대전까지 오시는 길이 힘드셨을 텐데 직접 와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무척이나 컸다.
결혼 후 2주 정도 지났을 때 아저씨께 연락이 왔다. 멕시코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했는데, 치안이 안 좋은 곳에서 안전하게 돌아왔는지 걱정되었다고 하셨다. 축하해주시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남편과 함께 암사역으로 아저씨를 찾아뵀다. 서울에 살았지만 8호선 끝인 암사역 방문은 처음이었다. 아저씨께서 일을 마친 후 늦은 시간에도 식사가 가능해 늘 찾으셨다는 우렁쌈밥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단골손님이라 주인아주머니도 잘 아시는 것 같았는데 우리를 아들, 딸이라고 소개하셨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러 찾아뵌 길이기에 우리가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시면서 식사비를 내셨다. 다음 기회에 저희가 꼭 식사 대접을 하겠다며 신혼여행지에서 사 온 선물을 건넸더니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마워하셨다. 무엇인지 확인해보시기도 전에 우리가 준비한 마음만으로도 이렇게 감동하시다니... 나까지 코끝이 찡해졌다.
아저씨와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니 인생이 참 파란만장하셨다. 선릉역에서 빅판으로 활동하시던 때에도 처음에는 힘들어서 혼자서 몇 번이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그때 빅이슈 잡지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아저씨를 찾아뵙었다. 집에 빅이슈 잡지가 쌓여가서 다 읽은 잡지는 동료들과 나눠보려고 회사에 잔뜩 가져갔는데, 아저씨께서는 홍보해준다며 무척 고마워하셨다. 아주 작은 행동이 그 당시 많이 힘드셨던 아저씨께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저씨께는 그 타이밍이 희망을 갖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저씨께서는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현재 연락이 닿는 가족이 없기에 인생에서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많이 느끼시는 것 같다. 자식들에게 베푸는 낙으로 사시는 게 부모라고, 가정을 최우선시해서 생활하라고, 무엇보다 두 사람 행복하게 살라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결혼하고 변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잘 사는 거라며 남편 교육도 단단히 시키셨다.^^ 인생의 풍파를 견디시면서 느낀 후회와 깨달음이 묻어 나오는 말씀이라서 잘 기억해두고 싶다. 우리 부부 주변에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하고 응원해주시는 분이 많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찬바람이 불어 기침하시는 모습을 보고 얼른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나는 괜찮다며, 둘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라며 인사하고 가시는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왜 어른들은 언제나 나는 괜찮다고만 하시는 걸까? 추워지는 계절, 아저씨께서 건강하고 따뜻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