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나를 찾는 명상하기

by 이수댁


17일(금) 포스코 미술관에서 기획 특별전 <예술, 그냥 즐겨!!>와 연계한 미술 치료 전문가의 특별 강연이 있었다. 주제는 <나를 찾아가는 그림 치유 여행>이었다.

나. 나다움.
'나'란 존재는 가장 가까이 있지 않나? 그런데 '나'를 찾는 일은 왜 이리 어려울까?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진정한 나의 모습은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미술관 내 다양한 전시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 앞의 질문카드를 골랐다. 엄익훈 작가의 '빛으로 탄생한 그림자 조각'이 좋았다. 작은 조각을 움직여 새로운 그림자를 만들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그림자 머리 위에 고깔모자, 트리, 루돌프 등을 만들며 놀았다. 잠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마음이 들었다.

쾌적한 전시장에서 그림을 보는 것도 명상이라고 한다. 의식을 나에게 집중해서 공간을 느껴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수채화 물감, 파스텔, 색연필, 보드마카 등 다양한 재료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손으로 그림을 그려본 게 언제인지... 종이에서 나는 소리, 피어오르는 색,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그려보는 시간이 마음 편안하고, 즐거웠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내 의지와 달라도 "네, 알겠습니다."라며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불편하고, 싫더라도 내 진짜 마음은 뒤로 미뤄둬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어떤가? 효율성을 따지며 정보를 검색하는 건 익숙해도 찬찬히 생각해 볼 여유는 부족하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빠르게 판단하고 분류하려 든다. 복잡하게 두 번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는 동안 나란 존재는 나에게서도 잊힌다. 나를 찾으려면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빠르게, 앞으로!'만 외치지 않고 내 마음은 어떤지 돌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한데...

우리 안에는 '이름 붙일 수 있는 나'와 '이름 붙일 수 없는 나'가 있다. 스스로 알고 있는 나,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은 '이름 붙일 수 있는 나'이다. 그러나 나조차 알지 못했던, 숨기고 싶지만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내 모습도 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나 '이다.

효율성을 위해 긴장하고 있는 나를 이완한다. 좋은 것을 충분히 느끼고,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나를 짜증스럽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만나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은 무의식을 의식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혀 느낌이 없는 것도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나'와 만나는 시간은 우리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강연이 끝나기 전, 교수님께서는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며 현재의 나의 내면을 해석해주셨다. 내가 그린 그림은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나에게 메시지를 주는, 가능성 있는 그림이라고 한다. 일주일 정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나'와 '이름 붙일 수 없는 나'를 모두 수용하고, 조화롭게 만들고, 강점화하라고 말씀해주셨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보다 창의적이고, 건강하고, 유연해질 수 있기에...


마지막으로 천천히 생각하고, 빠르게 판단하려 하지 말라는 말씀도 참 좋았다. 모두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일방적인 강연이 아닌 직접 느껴보고, 그려보며 참여하는 시간이라 더욱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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