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임신 23주 차 이야기 2
어제 집으로 가는 길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원래 운전하면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노래 따라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감흥이 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남편과 저녁을 먹는데
대화가 재밌고, 신나기보다 걱정되고 거슬리는 게 아닌가...
'아직 수도권 지역에 집단감염이 심각한데 직장 동료의 딸 결혼식까지 간다고?
사실 나도 같은 날 친구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인데, 남편이 알아서 결정할 일 아닌가?'
- "알아서 해요."
- "무슨 일 있어?"
- "아니, 그냥. 오늘 좀 피곤했나 봐. 저녁 먹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좀 가질게."
- "그래, 그럼. 각자 자유시간을 갖자."
알아서 하라는 말, 혼자서 시간을 보내겠다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 말이다.
물론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하루 중 같이 있는 시간은 퇴근 후 시간이고 그 시간에 같이 이야기 나누고,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데...
저녁을 준비해준 남편에게 포도를 씻어다 주려고 부엌으로 갔다가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왜 울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조금 속상했다.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집에 온 나를 반겨주는 남편에게 시무룩했던 게,
나 혼자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했던 게,
남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쳐다보게 한 게...
흐르는 물에 포도를 씻으면서 울다가 밥을 마저 다 먹었다.
밥 먹고 각자 설거지와 청소기를 맡아서 집안일을 한 뒤 함께 산책을 했다.
집에 쓰레기봉투가 다 떨어져서 사 왔는데, 내가 봉투를 영 열지 못하자 남편이 입구를 펼쳐서 내 머리에 씌었다.
'날 버릴 속셈인가...' 그렇게 웃었다.
저녁에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오빠가 날 쓰레기봉투에 싸서 버리려고 했다고 이야기했더니 잘했다며 재미있어하셨다.
그러면서 그런 날도 있는 거라고...
엄마도 이십 대, 삼십 대가 지나면서 계절을 느끼고, 감동을 받는 시간이 줄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지나가는 날이 많아지는 걸 느꼈다고...
아이가 생기고, 일을 하다 보면 나를 챙길 여유가 부족한데
결국은 다 마음의 문제니까 기분 전환하고 지혜롭게 잘 넘기라고 위로해주셨다.
산전, 산후 우울증도 있다고 하니 그런 점에서 조금 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여유시간을 가져야겠다.
예를 들어서 이렇게 아침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것...
이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즐거움과 위로가 된다.
준비한 행사들이 코로나와 날씨라는 예상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와중에도 심호흡 한번 더 하고, 하늘도 올려다보며 마음의 여유 가질 수 있기를...
오늘도 안지영을 마음 가득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