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후 펼쳐보아도 감동적인 가족사진집

『윤미네 집』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를 읽고...

by 이수댁

윤미네 집(1990년)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윤미네 집』은 큰딸 윤미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집갈 때까지 윤미, 윤호, 윤석 세 아이들이 함께 한 평범한 일상을 기록한 사진집이다. 대부분 첫째 아이의 이름을 따서 OO엄마, OO아빠라고 부르듯이 딸 하나 아들 둘이 있는 집이지만 사람들은 줄곧 '윤미네 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진집을 기획한 전몽각 선생님은 평안북도 용천 출생이며, 토목공학자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대학 교수로 제자를 키워냈다. 그리고 사진 찍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마추어 사진가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이런저런 지시 없이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사진의 소재였다. 귀가가 늦을 때는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다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으면 아이 깨운다고 아내에게 야단맞은 적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카메라를 의식하게 되고,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필름 소비량이 자연히 줄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집의 기록을 보면 큰딸의 백일, 첫나들이, 입학식뿐만 아니라 애인과의 데이트 장면도 담겨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진이 정말 재미있었다. 데이트하는 두 사람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을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루를 할애받았지만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두 시간 만에 촬영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작가님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그런 딸의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담아주고자 하는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진 속에는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 있고, 작가님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꾸밈없이 담은 사진들을 쭉 보다 보면 카메라 너머에 계신 작가님이 느껴진다. 또한, 아내와의 데이트 시절부터 췌장암 선고를 받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진과 글을 정리하여 '마이 와이프(My wife)'라는 사진집을 선물하신 대목도 감동적이다. 한 소녀가 어머니로 성장하여, 할머니가 되어가는 평생의 여정을 엮은 사진첩은 아내에게도 너무나 큰 선물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윤미네 집』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사진으로 여과 없이 표현한 아마추어 사진가 아버지를 통해 만들어진 한 가족의 작은 전기일 뿐만 아니라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중산층 가정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인 기록이다. 내가 태어나던 해인 1990년에 발간된 사진집을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찾아보고,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니 어찌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있을까?



* 마음에 와 닿은 문장들


p4.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일이다. 윤미가 없는 '윤미네 집'... 지금까지는 모두들 우리 집을 윤미네 집이라고 불렀었다. 그때서야 나는 아이들 사진 찍는 일도 마무리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26년 동안 찍어둔 필름 뭉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p5. 아이들의 일상생활은 보기에 따라서는 비슷하고 평범한 것 같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그게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새롭고 독특하여 아무리 섬세한 예술가일지라도 연출로는 불가능한 그런 자체 표현을 수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손에 든 내가 이래라, 저래라 지시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p158. 윤미의 짧은 연애시절이었지만 그 행복한 한 때를 기록하고 싶었다.

몇 미터 그들 뒤를 따르면서 나대로 사진을 찍을테니 아빠를 의식하지 말 것, 평소대로 행동할 것을 약속하고 하루를 할애 받았었는데 두 시간 만인가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너무나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p159. 기억과 망각 사이에 사진이 있다. 잊혀져 가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숨쉬게 하는 사진.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과거의 한 순간이지만, 그것이 되살리는 것은 그 순간을 감싸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것, 사랑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펼쳐질 때 그것은 오늘,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되돌아가지 못해 더 아름답게 추억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이, 사진 속에서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p160.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조금 궁상스러운 모습들조차 모두 푸근하게 느껴졌어요. 찌그러진 양은 냄비, 손뜨개한 스웨터, 기운 자국이 있는 내복, 정돈되지 않은 집안에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엄마와 삼 남매가 정답게 살아하는 모습에서 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공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또 가족의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꾸밈없이 기록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p173. 아이들을 낳은 후로는 안고 업고 뒹굴고 비비대고 그것도 부족하면 간질이고 꼬집고 깨물어가며 그야말로 인간 본래의 감성대로 키웠다. 공부방에 있다 보면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온 집안 가득했다. 그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몰래 아이들에게 달려가 함께 뒹굴기도 일쑤였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집 같았다.

...

그런데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것은 한 번도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충실한 방관자로의 푸엉한 내면세계만 지니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들은 항상 새롭고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어떤 뛰어난 예술가의 연출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경이로움을 아이들은 수시로 표현해 주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하루하루ㅎ가 내게는 모두 한 컷도 놓치기 아까운 장면들이었다.


p175. 아들 녀석들 때는 그런대로 덤덤했었는데 윤미를 시집보냈을 때는 그게 아니었다. 첫아이에 대한 남다른 감정도 감정이었지만 윤미는 결혼한 직후 신랑을 따라 멀리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김포공항에서 윤미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윤미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주인 없는 방에는 커튼만이 방안 가득 펄럭이고 있었다. 그 허전함과 서운함이라니! 집사람은 돌아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또한 뜨거운 그 무엇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랐다.


p177. 누군가 말했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함께 뒹구는 일이 가장 큰 행복이라면 나는 2대에 걸쳐 그 행복을 맘껏 누리고 있다. ... 어느 날이었던가. 주은이와 함께 거실 바닥에 잠든 집사람의 얼굴을 보며 나는 코끝이 찡했다. 거기에는 오래 전 내가 알았던 사투리가 심하고 수줍음 많던 갈래 머리 여고생이 잠들어 있어다. 그런데 그녀는 눈 깜짝할 사이 세월의 한 허리를 베고 누워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을 한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p202. 매일 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살자 그러면 충분하지 그렇게 다짐했지만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을 때는 무섭고 두려웠다. 그가 없는데 달이 뜨면 어쩌나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봄이 오면 혼자서 어떻게 할까.


p205. 어떤 작가는 흔히 일상생활에서 보기 힘든 장면들을 포착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금하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어떤 작가는 평범한 가운데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을 사진을 통하여 보이게 하기도 한다. 이것이 사진이 다른 예술의 장르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순간포착이라는 기록성은 한 장의 사진이 세계를 변화시킬 만큼의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진들이 연속적으로 한 제목에 의하여 이루어질 때 사진들은 역사성을 지니게 된다.


p206. 한 청년이 사랑하는 이를 만나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출가시키고, 손자손녀를 맞고, 마침내는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삶을 마감하는 인생의 흔적이 『윤미네 집』에는 아름답게 담겨있다. 찌그러진 냄비에 밥을 나누어 먹고, 좁은 방 한 칸에서 모로 누워 잠을 청해도, 간혹 비치는 고단한 표정에까지 『윤미네 집』에는 늘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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