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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an 22. 2017

평생 스마트폰이 미울 것 같습니다

김예원 변호사의 Law Essay

글쓴이 :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대표/변호사. 사법연수원을 41기로 수료한 후 법무법인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재단법인 동천 소속 공익변호사를 거쳐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서 상임변호사로 일했다. 6년간 심각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를 구조하고 대리하였고, 장애인 인권 관련 공익소송을 기획하여 수행하였다. 현재 다양한 장애인 차별과 인권침해 사례를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인권교육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장애인 인권 관련 제도와 정책 개선을 위한 매뉴얼, 연구, 논문을 지속적으로 집필, 발표하고 있다.


지적장애 1급 딸 김민영씨가 집을 나간 지 두 달이나 되었다는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심각한 상황인 것 같은데 약간 체념한 듯한 심드렁한 목소리였다. 갈만한 곳을 떠올려보라고 했더니 “아마 서울역 쪽에 있을꺼에요.”하는 것이다.


엄마 아빠와 살고 있는 20대 초반의 여성장애인이 왜 서울역에 가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수학교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통제가 안돼요. 성인이 돼서 부모도 법적으로 아무 제지를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는 자꾸 법을 탓하셨다.


그리고 나서 충격적인 대답이 이어졌다.


“민영이가 고등학교 때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들하고 안 좋은 일이 있어가지고 경찰에 잡혔거든요. 그 노숙자들이 성폭력 무슨 법으로 감옥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한 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얼른 전화를 끊고 서울역 일대의 노숙인 지원단체 여러 곳에 연락하여 민영씨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민영씨는 지적장애 1급으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의사소통은 비교적 원만한 편이었고 미소가 예쁜 사람이었다. 제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며 매일 확인했다.




한 보름 쯤 지난 날, 아버지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민영씨를 찾았다고 한다. 지금 어디 있냐고 했더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단다. 그제 밤에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민영씨가 노숙인 차림에 술에 만취한 상태로 길가에 서 있는 차량의 백미러를 부수고 있다가 잡혔던 것이다.


어떤 상황인지 민영씨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정신병원에서 하루 빨리 나오게 해 주고도 싶었다. 그런데 쉽사리 약속을 잡기 어려운 것이다. 아버님께 그 이유를 물었다.


“변호사님.. 사실 저희 민영이가 발견 되었을 때 몸에 상처가 많아서 바로 병원에 갔었거든요. 그런데 뱃속에 아기집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작은 아기집인데 애기가 잘못돼 있다고 해서 수술까지 하는 바람에 지금 몸을 회복하느라고요. 저도 잘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가슴이 무너졌다. 그렇게 걱정했던 일이 기어이 일어났던 것이다. 일단 아버지를 진정시켜드리고 지난 몇 년 간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보았다.


“민영이가 활달하고 친구 사귀는 것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 주변 친구들이 쓰던 스마트폰을 사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이상한 채팅 앱이 깔려 있는 거에요. 그래서 걱정이 돼서 스마트폰을 다시 못쓰게 했더니 난리가 나더라고요. 저는 그게 이렇게 일을 만들 줄은 정말 몰랐어요.”




민영씨는 맨날 만나는 특수학교 친구들 말고 새로운 비장애인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민영씨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해 민영씨를 불러낸 사람은 서울역 주변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민영씨는 그 사람의 지인들인 서울역 인근 노숙인들과도 알게 되어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제가 그렇게 가지 말라고 달래도 계속 집만 나가면 거기 가있어요. 어떻게 해도 제 말은 안 듣는데 어쩌면 좋죠? 모두 제가 스마트폰을 사줘서 그런 것 같아요. 평생 스마트폰을 미워하면서 살 것 같습니다.”


얼마 후 민영씨가 많이 회복되고 나서 만났다. 민영씨는 쾌활하게 이야기 하는 편이었지만 유독 가해자를 특정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어찌어찌 겨우 특정된 가해자들을 경찰서에 고발했지만, 노숙인인 가해자들을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해당 고발 건은 각하되었다. 불기소처분 통지서를 받아들고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다시 민영씨를 만나 속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민영씨는 집이 답답했다고 한다. 복지관도 재미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울역의 아저씨들은 재미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술도 주고, 담배도 주고, 노래도 부르러 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들뜬 대화 속에 숨겨진 의미는 더 아프게 다가왔다.



지적장애 여성을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하기 보다는 ‘보호의 대상’,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이 사회 속에서 민영씨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가해자들은 이렇게 많은  ‘민영씨’들의 답답함과 공허함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네가 제일 예쁘다고, 네가 최고라고, 너는 할 수 있다고. 그 나쁜 길들임에 익숙해진 지적장애여성은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기 어렵다. 가해자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먼저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적장애 여성이 나쁜 길들이기에 노출되기 전에 이 사회가 먼저 프레임을 전환하면 어떨까. ‘통제의 대상’에서 ‘가능성의 주체’로,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사람’에서 ‘조심하지 않아도 안전한 사회 속 자유로운 사람’으로, ‘혼자 지내야 하는 여성’에서 ‘연대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여성’으로 말이다. 


“아버님, 스마트폰을 미워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수많은 지적장애여성이 자유롭게 함께 살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 사회가 잘못한 것이죠.” 


아버님께 힘주어 몇 번이나 말씀드렸던 이 말을 오늘도 다시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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