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변호사 Feb 06. 2017

나에게는 권리, 너에게는 은혜

김예원 변호사의 Law Essay

글쓴이 :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대표/변호사. 사법연수원을 41기로 수료한 후 법무법인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재단법인 동천 소속 공익변호사를 거쳐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서 상임변호사로 일했다. 6년간 심각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를 구조하고 대리하였고, 장애인 인권 관련 공익소송을 기획하여 수행하였다. 현재 다양한 장애인 차별과 인권침해 사례를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인권교육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장애인 인권 관련 제도와 정책 개선을 위한 매뉴얼, 연구, 논문을 지속적으로 집필, 발표하고 있다.    


형사고소는 몇 번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하게 된다. ‘과연 이 행동이 형사적으로 처벌받을만한 행동인가’를 여러 번 되묻는 것이다. 그래서 ‘고소부터 하고 보자’는 목소리는 일단 진정을 시킨 후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본다.      


심민석씨도 화가 많이 나서 오셨다. “변호사님! 이 사람들 때문에 지난 연말에 저 정말 죽을 뻔 했습니다. 꼭 처벌받게 해주세요!”     


심민석씨는 십년 전 쯤, 한창 직장생활을 하던 30대에 큰 교통사고로 경추를 다쳐서 척수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교통사고가 크게 났었어요. 혼수상태도 몇 개월이었다고 해요. 죽는 줄 알았거든요. 다행히 살아나긴 했지만 목을 다쳐서 목 아래로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요. 보시다시피 팔만 겨우 움직이고 가슴 아래 부분은 감각이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장애인 활동보조인이 매우 필요했던 심민석씨는 장애인 활동보조제도가 도입된 2007년부터 생존을 위해서 활동보조를 계속 받고 있었다. 깐깐한 성격 때문에 초반에는 활동보조인이 몇 번 바뀌었지만, 지금 활동보조인과는 오래 연을 같이 해오던 상태였다.      


문제는 연말 연초 연휴에 이 활동보조인의 가족 중 병간호가 필요한 사람이 생겨, 갑자기 활동보조인이 그만두게 되면서 발생했다.      


“활동보조 선생님이 그만 두신다고 제게 처음 말했을 때부터 저는 활동지원기관에 새로운 활동보조 선생님을 구해달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었어요. 가을부터 이야기 했었거든요. 그런데 계속 제 말을 건성으로 듣는 것 같더라고요.”      


활동보조인의 마지막 출근일 아침까지도 다음날 활동지원을 해 줄 새로운 활동보조인이 정해지지 않자, 심민석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리고 담당자와 크게 싸웠다고 한다. 그날 오후 담당자에게 ‘최선을 다하긴 했는데 안 되었으니 알아서 하라’는 통보를 받고 기관과의 연락이 두절되었던 것이다.     


“그날 밤에 정말 무서워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내일 아침 6시에 평소처럼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러주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겨우 잠이 들었어요.”     


심민석씨는 가슴 이하에 감각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신변처리가 어려워 기상하자마자 넬라톤(도뇨관을 삽입해서 소변을 배출)을 받아야 했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움직이는 것까지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그만큼 활동보조인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침 6시가 훌쩍 지나 7시가 될 때까지 현관문 초인종은 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요. 일단 119에 전화를 했어요. 인근 병원에 입원을 했죠. 넬라톤부터 받고 응급처치도 받았어요. 조금만 늦었으면 방광이랑 신장까지 염증이 올라올 뻔 했대요. 입원실로 옮겨 들어오는데 그제서야 겨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는 생명과도 같은 것인데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운영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저는 꼭 그 기관과 담당자 처벌받게 하고 싶어요!”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에는 [활동지원기관은 수급자로부터 활동지원급여 제공을 요청받았을 때에 타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규정이 있고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활동지원사업 지침에는 [활동지원기관이 급여 제공을 지속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하여 계약을 해지할 경우에는 최소 14일 전에 통지하여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몇 번 더 자세한 상담을 하고 구청이나 해당 기관을 통해서도 관련 자료를 받아보았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 위반으로 고소장을 작성해서 제출했다.      


“변호사님, 예상은 했었지만 쉽지는 않아 보이네요. 이런 일이 저 같은 장애인에게는 정말 끔찍한 일인데도 공감이 잘 안되나봐요.”      


휠체어를 어렵사리 움직여 고소인 조사를 마치고 함께 나오면서 심민석씨는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게 급하면 본인 돈으로 간병인을 고용하면 될 일이지 왜 이런 일로 고소까지 하고 그러냐’는 식의 질문에 속이 많이 상하셨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각고의 노력을 들였음에도 불기소처분으로 종결되었다.     


내가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받는 것은 혜택이고 배려일까? 아니다. 나에게도 권리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권리이다. 그런데도 유독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에 대해서는 ‘나라에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이니 ‘그저 감읍하며 황송하게 받아들이라’는 식의 시선이 만연하다. 그런 시선의 바탕에는 약자에 대한 철저한 타자화, 그리고 혐오가 담겨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 약함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모두 약자인 것이다.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는 세상에서 약자는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도, 서로 연대할 수도 없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너는 강자가 되어 약자를 도와주며 살아라’라고 말하기 보다는 ‘누구나 약한 모습이 있으니 함께 힘이 되어주며 살아라’라고 말해주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조우성변호사의 개념탑재 : 묵비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