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법이야기
캐나다의 통신업체가 계약서에 잘못 찍힌 쉼표 하나 때문에 예기치 못하게 213만달러(약 20억원)를 지불해야 할 위험에 빠진 유명한 사례가 있다.
케이블전화 서비스업체인 로저스 커뮤니케이션은 2002년 캐나다 뉴브런즈윅 주(州)의 전신주 9만1000개를 임차하면서 전신주 사용권 위탁업체인 알리안트와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영어로 된 계약서 14페이지에
‘(계약은) 합의일로부터 5년간, 그리고 그 이후 5년간, 계약종료 1년 전까지 서면통지가 없는 한 유효하다’는 문장이 문제가 됐다.
“This agreement shall be effective from the date it is made and shall continue in force for a period of five (5) years from the date it is made, and thereafter for successive five (5) year terms, unless and until terminated by one year prior notice in writing by either party.”
두번째 쉼표가 없었다면 계약은 10년간 유효했을 텐데, 쉼표가 들어감으로써 1차 5년이 지난 뒤 알리안트가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알리안트는 5년 기간이 끝나는 2007년 계약을 종료하고, 3배 오른 사용료를 조건으로 새 계약을 맺겠다고 통보했다.
<해설>
새 계약시 213만달러의 추가 부담을 지게 된 로저스 사는 언어학자까지 동원해서 쉼표가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즉,
(1) 합의일로부터 5년간, 그리고 그 이후 5년간 계약종료 1년전까지 서면통지가 없는 한 유효하다. –> 이것은 10년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되, 1년전인 9년째에 해지통보가 가능하다고 해석
(2) 합의일로부터 5년간, 그리고 그 이후 5년간, 계약종료 1년전까지 서면통지가 없는 한 유효하다. –> 이것은 첫 5년이나, 두번째 5년모두 1년 전에 해지통보가 가능하다고 해석될 수 있음
이라는 차이가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유권해석기관인 캐나다방송통신위원회(CRTC)는 “쉼표의 법칙에 근거해서 본다면 1차 5년 기간이 끝난 뒤에도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며 알리안트의 손을 들어줬다.
이 분쟁은 법조계에서 ‘텔레-코마(tele-comma)’란 별칭까지 얻어가며 유명한 연구 사례가 됐다.
캐나다와 미국의 몇몇 로스쿨(법과대학원)에선 법조문 작성시 유의해야 할 사례로까지 연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