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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2. 2015

때로는 과정이 결과를 뛰어넘는다

고객의 고통에 공감하는 노력

후배 변호사들을 위한 강의안 중 일부인데, 변호사 이외의 다른 전문직, 컨설팅에 종사하시는 분들, 서비스를 제공하시는 분들에게도 참고가 될까 싶어 공유합니다. 


정말 중요한 아침 회의가 있었는데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9시 반 회의인데 눈을 떠보니 9시 20분. 이런…. 

고문기업 사장님과의 심각한 회의였고, 빡빡한 사장님의 스케줄 틈 사이에서 겨우 잡은 약속이다. 머리가 하얘졌다. 


법무팀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일단 자신이 어떻게든 회의를 미뤄볼 테니 최대한 빨리 오라고 했다. 나는 세수도 못하고 바로 튀어나가서 겨우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 제가 정말 급해서 그런데, 종로 00까지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중요한 회의에 지각해서 난처하게 됐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 길이 안 막혀야 할 텐데”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함과 아울러 자신의 휴대폰으로 실시간 지도검색 서비스를 켰다. 아무래도 실시간 교통정보를 이용하면 더 낫겠지. 하지만 통화요금이 들 텐데…. 


오늘 따라 길이 많이 막혔다. 

“어쩌지요, 손님. 꽉 막혀 있네? 제가 골목길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도 될는지요?” 

“네, 그렇게라도 해주세요.” 


기사는 급커브를 틀어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뿔싸, 골목 길 안쪽에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기사는 마구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자책했다. “아, 이럼 안되는데.” 다시 후진을 해서 큰 길가로 나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빨리 가 보려고 그랬는데….” 


“아이구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기사는 앞의 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하면 클랙숀을 울리면서 “아이 빨리 좀 가지 뭐하고 있나”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법무팀장으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지금 어디쯤이신가요?’ 

‘명동성당 앞을 지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기사는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비집고 들어가면서 곡예운전을 했지만 교통체증이 심해 결국 목적지까지 걸린 시간은 평소와 비슷한 40분 내외. 별로 빨리 도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사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급브레이크를 밟고는 뒤를 돌아다보며 “아이구 어쩌지요? 정말 일찍 모셔 드렸어야 하는데…. 오늘 따라 길이 너무 막혔습니다”라며 안타까와 했다. 


택시요금은 1만7000원. 나는 2만원을 건냈다. “거스름 돈은 됐습니다.오늘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구 무슨 말씀을. 제가 빨리 오지도 못했는데….” 

회의에는 늦었지만, 나는 결코 그 기사분을 원망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감사하고 일말의 감동까지 느꼈다. 


그 이유는 뭘까? 

초조해 하고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 기사분도 같이 고민하고 어떻게든 빨리 목적지에 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기사분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오히려 더 미안해 하니 나는 결과(늦은 도착)와는 상관없이 그 기사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과연 나는 변호사로서, 저 기사분처럼 약속시간에 늦어 발을 동동 구르는 승객과 같이 고민해 주고 있는 걸까? 지각한 회의를 통해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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