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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May 23. 2023

법소설 시리즈(1) 원칙으로 돌아가서

소설 형식으로 판례와 법지식에 대해서 풀어봅니다.   

  

1화 원칙으로 돌아가서          


#1

“대표님. 이 사건 수임하긴 했는데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한우현 대표변호사 앞에서 심용오 변호사는 근심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     

“만만치 않은 사건인데 왜 수임했어? 패소하면 부담이 클 텐데...”

“그게... 사연이 딱하기도 하고. 한번 싸워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작은 부띠끄 로펌을 운영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패소 가능성이 큰 사건은 맡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스스로 비겁하지 않나 생각도 들긴 했지만, 패소한 뒤의 그 쓰라림이 너무힘들었기에.     


#2


사건 브리핑은 이러하다.     


김효식(32세)은 S은행 대리. 의뢰인인 박돌희(35세) 사장은 중소기업 사장. 박돌희 사장은 김효식 대리의 대학 선배.


박 사장은 운전가금이 급히 필요해서 여기저기 대출을 시도해봤지만 돈을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대학후배인 김효식 대리에게까지 요청을 하게됐고. 김효식 대리는 선배에게 대출을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다, 최근 S은행이 출시한 ‘중소기업 대상 운전자금 희망UP 대출’ 상품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대출상품을 받으려면 S은행과의 거래 실적이 필요했다. 박돌희 사장은 여유자금이 없는 상황이라 갑자기 S은행과의 거래실적을 만들어 낼 여력이 없었다.     


김 대리는 자신이 모아놓은 전세자금을 인출해서 박돌희 사장 회사 명의로 계좌를 만들었다. 그리고 가공의 입금, 출금 거래를 만들어서 마치 S은행과 거래가 있는 것처럼 꾸몄다. 이 과정을 통해 박 사장은 대출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박 사장은 고마운 마음에 김 대리에게 상품권 50만 원치를 선물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김 대리의 상사인 송철호 과장이 알게 되었다. 송 과장은 박 사장을 불러서 겁을 주었다. ‘김 대리가 한 짓은 우리 은행 내규에 위반된 것이다. 더구나 김 대리가 상품권을 받은 것으로 아는데, 이는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업무와 관련하여 알선 명목으로 금품을 건넨 것이므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른 알선수재죄에 해당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김 대리는 형사처벌을 받게 되고 직장도 잃게 된다.’라고.
 

박 사장은 머리가 하얘졌다. 자기를 위해 힘써준 김 대리가 처벌받고 직장까지 잃을 수 있다니. 이런 협박을 하면서 송 과장은 ‘오히려 대출심사부에 실무를 담당하는 과장이 내 동기다. 그 친구를 내가 소개해 줄 테니 돈을 달라. 내가 중간에 나서면 이 모든 일이 부드럽게 진행될 거다. 김 대리가 다칠 일도 없고’라면서 금품을 요구했다. 박 사장은 김 대리가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리고 실제 대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과 연결해 준다는 말에 송 과장이 요구하는 대로 2,000만 원을 줬다.     


그런데 박 사장의 대출신청이 심사부서에서 거절되었다. 아무래도 급조한 거래 모습이 의심을 사게 된 것이었다. 박 사장은 실망스런 마음에 송 과장에게 자신이 건넨 2,000만 원을 돌려 줄 것을 요구했디. 하지만 송 과장은 차일 피일 반환을 미루었다. 화가 난 박 사장은 송 과장이 자신을 협박해서 돈을 받은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송 과장을 체포해서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송 과장은 수사를 받으면서 이 일은 김 대리가 먼저 시작한 일이고, 김 대리는 고소인인 박 사장의 대학 후배이며, 자신은 그냥 이 일을 뒤에 알게 되어 숟가락만 얹은 것에 불과하다고 변명했다. 송 과장은 이렇게 김 대리를 끌어 들이면 자신의 죄가 더 가벼워질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똥은 김 대리에게도 튀었다. 검찰은 김대리와 송과장 둘 다를 특경법상의 금융기관 임직원 알선수재죄로 법원에 기소했다.     


#3

“그럼 우리 의뢰인이 누구인건가?”

한 변호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심 변호사에게 물었다.

“이 사건 자체를 의뢰한 것은 박 사장이구요, 박 사장은 김효식 대리를 변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럼 박 사장이 돈을 내고, 자신의 후배인 김 대리를 변호하고 싶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사실 송 과장이 나쁜 사람이고, 김 대리는 좋은 마음으로 이 일을 하게 된 것이라서 박 사장이 마음 아파합니다.”     


“흠, 호의를 베풀더라도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건데. 하지만 김 대리가 딱하긴 하네. 결국 50만 원짜리 상품권을 받았다는 거지? 그래도 받긴 받았네...”     

사정은 딱했지만 금융기관 임직원의 비리에 대해서는 우리 특경법이 정말 강하게 처벌하고 있어서 빠져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죄는 인정하되 최대한 정상참작을 해 달라는 쪽으로 변호 방향을 잡아보려 합니다.”


심 변호사는 자신의 변호 전략을 말했다.

한 변호사도 이에 동의했다.

“그래. 그리 큰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또 피해자인 선배를 위해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니 피해자인 선배가 탄원서를 써 낼 수 있으면 좋겠고. 하여튼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변호를 해 보자구.”     


#4

“선배님, 이번에 골치 아픈 사건을 수임하셨다면서요”


김효식 대리의 기록을 보면서 정상참작을 주장할 거리를 찾고 있던 심용오 변호사 방에 후배인 조영세 변호사가 커피를 사들고 나타났다. 이제 갓 로스쿨을 마친 신참 조변호사.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녀는 스스로를 ‘AI 같은 감성이 없는 변호사’라며 자학한다.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다.

“뭐. 어렵긴 한데. 어차피 무죄 다툼이 아니라 정상참작을 주장할 거라. 법리적으로는 우리가 불리하거든.”

“안 그래도 실장님께 전해 들었어요. 그런데. 그냥 정상참작을 주장할 거라면 의뢰인이 뭐하러 돈을 내고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거예요?”     


‘잉?’     


심 변호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마치 심 변호사가 사건을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게 했다.

“법리적으로 불리한 사건에서 괜히 무죄를 다투면 판사에게 괘씸죄로 찍혀서 더 형이 가중된다고. 로스쿨에서야 이론적인 걸 배웠겠지만 실무에선 여러 사정을 고려해야 해. 가장 중요한 건 의뢰인이 안 다치게 하는 거고.”     


실무 경험 없는 햇병아리에게 한 마디 해주는 심정으로 심 변호사가 점잖게 쏘아 붙였다.

“하지만 첫 공판기일에 일단 유죄는 인정하고 정상참작 주장부터 하면 나중에 무죄 주장은 아예 못한다고 배웠는데. 그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는 거 아닌가요?”

“싸워보지도 못하다니. 정상참작을 주장하는 것도 의뢰인을 위해 변호사가 싸우는 거 아닌가?”     

심 변호사는 영 심기가 편치 않았다. 초짜 변호사로서의 패기와 낭만을 아직 갖고 있을 때니 뭐. 이해해야지.

“선배님. 어차피 제가 올해는 선배님 사건을 많이 써포트하라고 대표변호사님이 지시를 내리셨으니 이 사건에 대한 판례 서치를 도와드려도 될까요?”

심 변호사 입장에서야 시키지도 않는데 후배가 도와준다고 하니 사양할 일은 아니었다.

“조 변호사, 근데 너무 힘빼지 말아. 김 대리가 딱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출 업무를 하면서 고객에게 편의를 봐주고 대가로 금품을 받은 건 사실이니 특경법상의 알선수재 빼박이거든.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해 보라구.”     


#5


첫 공판기일을 일주일 앞둔 날 저녁.

조 변호사가 심 변호사 방을 찾았다.

“선배님, 알선수재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일까요?”

신 변호사는 조 변호사의 뜬금없는 질문에 어리둥절했다.     

“알선수재가 알선수재지 뭐긴 뭐야. 알선! 누군가를 소개해 준다, 수재! 돈을 받는다, 그거 잖아?”

“그죠? 지금 피고인은 알선수재죄로 기소된 거죠?”

“그래.”

심 변호사는 한심하다는 듯 조변호사를 쳐다봤다.     

“선배님. 그럼 김 대리는 그 피해자인 박 사장을 누구에게 소개시켜 준 건가요? 누군가에게 소개시켜줘야 알선이잖아요.”


‘잉?’     


“제가 특경법 조문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기서 알선수재가 되려면 고객과 특정 금융기관 임직원 사이를 중개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아야 하는 것 같은데, 김효식 대리는 본인이 그 고객을 도와줬고 그 고객이 고맙다고 상품권을 준것일 뿐이잖아요. 이 사실관계에서는 알선이 없지 않나요?”     

“그게... 아니 어쨌든 김 대리는 불법적인 일을 하고 돈을 받은 거.... 잖아?”

“형사적으로 처벌이 되려면 구성요건에 부합해야 하는데, 적어도 알선수재로 볼 수는 없지 않나요?”     


거참... 심 변호사는 조 변호사의 말에 효과적으로 반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첫 공판 기일에 덥썩 유죄를 자인하고 정상참작으로 가려던 변론방향을 바꿔야 하나 자신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조 변호사 말을 반박하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심 변호사는 대표변호사인 한 변호사에게 SOS를 치기로 했다.     


“흠... 조 변호사가 그렇게 말했다는 거지?”


한 변호사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조 변호사를 신입으로 받아들이던 그날이 생각났다.     

“심 변호사. 조 변호사 말에 일리가 있어. 적어도 검사가 알선수재로 기소했다면 그걸로 싸워봐야지. 구성요건에 과연 부합하는지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봐. 정상참작으로 바로 가지 말고 무죄주장을 해봐도 될 듯 해”

심 변호사는 후배 변호사에게 한방 먹은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그런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심 변호사는 조 변호사에게 무죄취지의 변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6


그로부터 4달 뒤, 3차례 공판을 거친 후 내려진 판결. 송 과장은 알선수재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김 대리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문에서 김 대리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법 제7조에서 말하는 금융기관의 임·직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을 수수한다 함은 적어도 금융기관의 임·직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에 대하여 상대방이 될 수 있는 금융기관의 임·직원 사이를 중개한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경우라야 하는 것이지, 이를 전제로 하지 않고 단순히 금융기관의 임·직원의 직무에 속하는 사항을 처리함에 있어서 편의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서 금품을 수수하였을 뿐인 경우에는 금융기관의 임·직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을 수수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김 대리는 S은행 내부 규정은 어긴 것이므로 징계를 받긴 했지만 형사적으로는 무죄가 인정되어 적어도 직장을 잃지는 않게 되었다.   

  

#7


무죄 판결을 받은 김 대리와 박 사장이 심 변호사를 찾아와서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심 변호사는 어깨가 으쓱했다.     

한 변호사가 심 변호사에게 웃으며 말했다. “참 보기 좋은 선후배군. 저 두 사람. 심 변도 조 변 잘 가르치며 좋은 선후배 사이가 되어야지?”

신 변은 머쓱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휴, 제가 가르치다뇨. 조 변. 아직 경험이 없어 그렇지 진짜 AI 같습니다. 예리하네요. 제가 긴장됩니다.”          


[관련조문]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7조(알선수재의 죄) 금융회사등의 임직원의 직무에 속하는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그 밖의 이익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 또는 제3자에게 이를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하게 할 것을 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관련판례]     
대법원 2010. 9. 9. 선고 2010도5972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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