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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May 23. 2023

법소설(2) 법인격부인론 역적용?


소설 형식으로 판례와 법지식에 대해서 풀어봅니다.    

 

2화 법인격 부인론 역적용이라?     


#1     


“심 변, 조 변 데리고 들어와 봐.”

로펌 키스톤 대표 변호사인 한 변호사가 두 명의 주니어 변호사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이거 1심에서 패소하고 우리 사무실에 의뢰 들어온 사건인데, 어려운 건이라는 걸 미리 말해두겠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의뢰인 대명전기(주)는 김희철씨와 거래를 했다. 대명전기(주)가 김희철의 개인사업체인 HC상사에 전기부품 2억 원치를 납품했다. 그런데 HC상사는 물품대금을 갚지 않고 있다가 폐업해 버렸다. 그 후 김희철은 자기 형제와 함께 ㈜효령무역을 설립했고, 김희철은 그 회사의 사내이사로 근무 중이다.

대명전기(주)가 신용조사를 의뢰해서 확인해 보니 김희철 명의의 재산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효령무역은 자산이 꽤 있었다. 그래서 대명전기(주)는 ㈜효령무역을 상대로 물품대금 청구를 했는데 1심에서 패소했다. 대명전기(주)가 갖고 있는 채권은 어디까지나 김희철 개인사업체에 대한 것이지 그와는 별개의 법인격인 ㈜효력무역에 대해서는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     


“대표님. 이건 당연한 법리 아닌가요?”

심 변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물론 그렇지. 개인에 대한 채권으로 별개의 법인에 청구를 하기는 어렵지.”


“그런데 법인격부인론이 있긴 하잖아요.”

AI 조 변호사가 눈을 반짝였다.     

심 변호사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법인격부인론은, 법인에 대해 채권이 있는 사람은 그 법인을 지배하는 실제 개인에게도 책임을 물릴 수 있다는 이론인데, 아주 제한적으로만 인정이 되고 있어. 그리고 법인격부인론은 일단 법인에 대해 발생한 책임을 그 뒤의 개인에게 물릴 수 있다는 건데. 이번 사건은 개인에 대한 책임을 그 개인과 관련 있는 별도의 법인에게 묻는 거니까. 굳이 따지자면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 같은 건데, 그게 되겠어? 대표 변호사님 평소 지론에 따르면 이 사건은 수임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패소가 명백한데.”     

한 변호사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렇긴 한데... 대명전기(주) 사장이 내 죽마고우야. 이런 얌체 같은 놈이 어디있냐고 난리야. 내가 이 사건은 법리상 불리하다고 말해줬는데, 져도 좋으니 2심을 꼭 해보고 싶다고 사정사정이야. 의뢰인 본인이 어려운 사건임을 충분히 알고서도 사건을 ㄱ맡긴다니, 해보자. 승패에 대해서는 부담을 갖지 말고. 최선을 다 해 보자.”     

#3     


대표 변호사 방에서 나온 심 변호사와 조 변호사.


“선배님. 이 사건은 진짜 불리해 보이긴 하네요.”

“그렇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보더라도 그렇고. 거의 가망성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 진짜 그 김희철이라는 사람은 얄밉긴 하네요. 원래 민법상 신의칙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대명전기(주)가 보호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렇긴 한데. 신의칙이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일반조항이라. 우리 법원은 그런 일반조항이 여러 사건에 막 적용되는 걸 싫어라 하거든. 그래도 한번 붙어보자.”          

심 변호사와 조 변호사는 대표변호사의 말대로 승패에 대한 부담없이 하지만 최선을 다해 보자는 생각으로 사건에 임했다.


사건을 계속 조사하다보니 김희철의 행동이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고의로 개인사업체를 폐업한 다음, 바로 그 장소에서 법인을 설립했고, 사실상 본인이 대표인 것 같은데, 그 전에 김희철이 저질러 놓은 일이 많아서 그런지 자기 동생을 대표이사로 세워놓고 본인은 사내이사로 뒤에 숨어 있었다. 개인사업체일 때의 자산도 그대로 물려받아서 현재 법인에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개인과 법인은 서로 다른 인격체이므로, 김희철의 채권을 근거로 김희철이 설립한 회사를 상대로 민사적인 청구를 하는 것은 기존 법관념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4     


첫 재판기일을 마치고 나오면서 한 변호사가 말했다.

“흐흠. 재판장이 고영록 부장이시네.”

“대표님이 아시는 분이세요?” 조 변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응. 사법시험 동기인데 나이는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선배시지. 엄청 학구적인 분이야. 걸어다니는 판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인데... 저 양반이 재판장인 게 우리에겐 좋은 일일지도 몰라.”     

그날 재판 다녀온 다음 한 변호사는 심 변호사와 조 변호사에게 법인격부인론 역적용에 관한 국내외 학술논문들을 다 뒤져 보라고 시켰다. 특히 조 변호사는 영어를 잘했기에 미국쪽의 판례 동향을 최대한 많이 살펴보라고 했다.     


#5     


“선배님. 확실히 미국 쪽 판례에는 법인격부인론 역적용에 관한 내용이 많네요. 여러 판례들이 계속 쏟아져 나옵니다.”

“그래, 조 변. 어차피 우리나라는 영미법계가 아니라 대륙법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참고가 될거야. 미국 판례에서 법인격부인론 역적용을 인정받은 판례들을 번역하고 그 논리를 우리 준비서면에 녹여 내 보자.”     


#6     


2심에서는 1심과 같이 법무법인 렉시스가 김희철씨의 ㈜효령무역을 대리했다. 렉시스의 주장은 ‘원고가 다소 억울한 바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과 별개의 법인격인 회사를 하나로 보아서 그 회사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자기책임원칙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서 사법질서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므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선배님, 좀 웃기지 않나요? 사법질서의 혼란은 지들 의뢰인이 자행하고 있는데 말이예요.”

“법을 아주 교묘히 악용하는 거지. 렉시스 애들 봐. 2심에서는 준비서면도 제대로 안내면서 변론하잖아. 뭐, 자신 만땅이라는 의미인가? 참....”     

로펌 키스톤에서는 대표 변호사부터 신입 변호사까지 매번 기일마다 장문의 준비서면과 참고자료를 제출했다.      


#7     


로펌 키스톤은 2심 마지막 변론기일에 김희철을 증인으로 볼러냈다. 로펌 키스톤이 김희철을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피고측에서는 증인신청을 기각해 달라고 재판부에 계속 탄원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재판장이 원고측(키스톤)의 신청을 받아들여 2심 마지막 기일에 김희철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루어졌다.     


증인신문 당일, 원고인 대명전기(주) 사장은 법정에서 김희철을 노려보았다. 김희철은 역시 빌런이었다. 분명 떳떳한 짓을 한 것이 아님에도 원고측 변호사들의 신문에 대해 빈정거리는 말투로 ‘내가 빚을 진 건 맞지만, 내 동생이 대표이사로 있는 ㈜효령무역이 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라며 여유있게 대답했다.

심 변호사는 그 동안 확보한 자료를 들이밀며, ㈜효령무역이 사실은 김희철이 운영하던 개인사업체인 HC상사의 후신(後身)임을 입증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최희철은 교묘히 빠져 나가는 형국이었다.     


#8     


2심 선고일.

로펌 키스톤에서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조 변호사가 대표로 법정에 나가서 선고결과를 듣고 오기로 했다.

선고 결과를 듣고 조 변호사는 귀를 의심했다. 1심 판결이 파기 되고 원고가 승소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판사가 판결문의 요지를 읽어 내려갔다.

“개인(김희철)이 새로 설립한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면, 회사(효령무역)와 개인(김희철)이 별개의 인격체임을 내세워 회사 설립 전 개인의 채무 부담행위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부인하는 것이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회사(효령무역)에 대하여 회사 설립 전에 개인(김희철)이 부담한 채무의 이행을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9     


우와~!!! 이게 되다니.

로펌 키스톤 멤버들은 이 기쁜 소식을 바로 의뢰인에게 알렸다.      

“와, 우리 법원이 정말 전향적인 판결을 내린 거 아닌가요?”

“글세. 이거 파장이 크겠는데. 대법원에서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무조건 기뻐하자구.”

한 대표 변호사도 기쁨을 감주치 못한 채 환하게 웃었다.     

“역시 의뢰인이 그렇게 억울하게 느낀다면 뭔가 방법이 있다고 봐야 해. 그게 신의칙이든 형평의 원칙이든 말야. 어차피 법은 상식이니까. 신 변, 조 변, 이번에 좋은 경험했어. 우리 쉽게 포기하지 말자구.”          


[관련 판례]     
대법원 2021. 4. 15. 선고 2019다293449 판결 [동산인도] [공2021상,966]     
회사의 법인격을 부인하여 그 배후에 있는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 및 회사에 대하여 회사 설립 전 개인이 부담한 채무의 이행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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