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변호사 May 24. 2023

법소설(3) 조변호사, 변호사 접을 뻔 하다.

#1     


"조 변호사님, 대표 변호사님이 급히 찾으십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샬라라 출근해서 여유있게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던 조 변호사.

유 실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데 특히 ‘급히’라는 말에 신경이 쓰였다. 뭔 일인지?     


“조 변호사. 자네가 파트너나 시니어 변호사인가? 응?”

사람 좋기로 유명한 한 대표 변호사가 엄청 화가 나 있다. 

“대체 동오산업에 자문을 줄 때 심 변호사의 컨펌을 왜 받지 않은 거야?”     


#2     


아... 동오산업!

한 달쯤 전에 법무 담당자가 전화로 간단한 사안을 물어봤던 거기?

조 변호사는 급히 기억을 더듬었다.     


부동산 매매계약을 했는데, 우리는 매도인. 상대방인 매수인. 상대방이 중도금까지만 내고 잔금은 내지 않고 있어서 계약을 해제하는 공문을 보내려는데 그 문구를 검토해 주는 건이었다.

매수인이 계약상 정해진 날짜에 잔금을 내지 않고 있으니 채무불이행상태였고, 당연히 매도인은 계약에 따라 매수인의 채무불이행을 지적하고 계약해제통보를 하면 해제가 된다. 그리고 계약에 따라 이미 지급받은 계약금 10%는 위약금으로 몰취를 할 수 있고.


그런 내용으로 공문이 잘 작성되어서 오케이 한 건데?     


“대표님, 제가 어떤 실수라도 한 건지요...”     

“조 변호사. 조 변호사는 이제 갓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햇병아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로스쿨에서 책으로 배운 걸로 실무가 다 된다고 생각해? 왜 이리 조심성이 없어?”     

조 변호사는 눈물이 찔끔 나왔다.

한 변호사는 인터폰으로 심 변호사를 찾더니, 조 변호사에게 현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 주라고 지시했다. 조 변호사는 뒷걸음질 치면서 한 변호사 방을 나왔다.     


#3     


“아주 대형사고를 치셨구먼 그래. 겁도 없이.”

심 변호사는 걱정하는 건지 고소해하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조 변호사에게 티슈를 건넸다.

조 변호사는 티슈로 눈물을 닦으며 대체 어찌된 일인지 물어봤다.     

“조 변호사, 매수인이 잔금을 내지 않고 있는 건 채무불이행이 맞아. 물론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도인이 그 점을 지적하면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지.”

“네... 의뢰인이 그런 취지로 통보서를 작성했기에 컨펌해 드렸는데...”     

“뭐 빠뜨린 거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


“네?... 뭘 더 챙겼어야 하죠?”     


“부동산 매매계약은 쌍무계약이지? 양쪽이 의무를 부담하는? 자, 매수인의 잔금지급의무는 매도인의 어떤 의무랑 쌍을 이루지?”     

“매수인의 잔금지급의무는... 매도인의 등기이전서류 교부의무랑... 쌍을... 이루죠.”     

“그러니까 말야. 지금 매수인이 잔금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매도인이 지적하는 건 좋아. 하지만 이 때 매도인은 ‘나는 이렇게 등기서류를 넘겨 주려고 준비하고 있다오’라는 의사표시를 해야만 해. 그래야 우리는 할 일 다했고, 너네는 할 일 다 못했으니 계약해제가 되는거야. 어렵게 말해 상대방의 동시이행항변권을 깨는 거지.”     


“아... 상대방 잘못만 지적했고 우리측이 할 일은 안 한 게 되는 거...?”

“그렇지”     


#4     

“그럼 지금 어떤 상황이 발생...한 건가요?”

조 변호사는 불안한 눈빛으로 심 변호사에게 물었다.


심 변호사는 입을 비죽거리며 말했다.     


“한 달 전에 조 변호사가 동오산업 담당자의 해제통보서 문구 검토 요청에 대해서 ‘그대로 보내셔도 됩니다’라고 답을 주는 바람에 동오산업은 해제통보서를 그대로 보내고 1차 매매계약은 해제됐다고 본 거야. 동오산업은 낼름 다른 업체랑 부동산 매매계약(2치)을 체결하고 계약금도 받았지. 하지만 최근 동오산업과 처음 계약했던 업체에서 동오산업의 계약해제는 잘못된 거라고 주장하면서 잔금을 납입할 테니 부동산 넘겨달라면서 딴 데 팔지 말라는 처분금지가처분이 들어와 버렸어. 이제 동오산업은 꼼짝 없이 최초 업체에게 부동산을 팔아야 하는데, 두 번 째 업체로부터 받은 계약금의 2배를 위약금으로 그 업체에게 토해내게 생겼지. 그래서 지금 동오산업 측은 우리 사무실에 손해배상 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어... 그 계약금이 얼마...인데요?”

“계약금이 5억 이니까 10억 원을 물어줘야 할 판이야.”     

10...10억!!!!!     


조 변호사는 앉아 있는데도 현깃증으로 쓰러질 것 같았다.

안돼요. 10억... 이거 내가 물어내야 하는 건가요... 안돼요...

아... 검토의견 주기 전에 선배 심 변호사에게 물어 보는 건데... 아... 이런...     


#5     


삐리릿.!     

“조 변,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응? 의뢰인이 가만히 있겠어?”

조 변호사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또 이런다. 대화하다가 갑자기 상황극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버릇은 어릴 때부터 생긴 거다. 일종의 방어기제인가 싶다.     


“네... 제가 그 점은 미처..”

“그래도 조 변이 내게 다시 문의하길 잘했지. 얼른 동오산업에 연락해서 그 문구는 그렇게 보내지만 말고 ‘우리 측이 등기 서류(등기권리증, 위임장 및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서) 다 준비했고 언제든 줄 수 있어요’라는 문구를 추가하라고 해.”


 “네,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많이 많이 가르쳐주세요.”

조 변은 악몽을 떨쳐버리듯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심 변호사에게 웃으며 말했다.     

“험험...쩝... 뭐 내가 좀 신경을 쓰지. 허허. AI 조 변.”     


아 변호사 하는 일이란 게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지뢰밭이구나. 조심해야겠다.

그래도 나의 망상으로 끝나길 다행이다. 실제로 일이 터졌으면.. 아찔하다.

조 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관련판례]
대법원 1992. 7. 14. 선고 92다5713 판결      

쌍무계약인 부동산매매계약에 있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수인의 잔대금지급의무와 매도인의 소유권이전등기서류 교부의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다 할 것이고, 이러한 경우에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지체의 책임을 지워 매매계약을 해제하려면 매수인이 이행기일에 잔대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매도인이 소유권이전등기신청에 필요한 일체의 서류를 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하여 그 뜻을 상대방에게 통지하여 수령을 최고함으로써 이를 제공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또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상대방의 잔대금채무이행을 최고한 후 매수인이 이에 응하지 아니한 사실이 있어야 하는 것이며, 매도인이 제공하여야 할 소유권이전등기신청에 필요한 일체의 서류라 함은 등기권리증, 위임장 및 부동산매도용 인감증명서 등 등기신청행위에 필요한 모든 구비서류를 말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법소설(2) 법인격부인론 역적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